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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 - 함영훈> 뉴스스탠드로 더 심해진 콘텐츠 선정성
메뉴 모르고 가게부터 찾는 격
뉴스스탠드 뭘 먹을지 불편
언론사-독자 접점 확대한다지만
되레 선정성 경쟁 심화 우려




네이버가 선정성 배제 등을 목적으로, 독자 스스로 선택한 매체만을 볼 수 있는 ‘뉴스스탠드’ 시스템을 1일부터 가동했다. 독자는 기사를 읽으려면 원하는 언론사 박스를 선택한 뒤 다시 헤드라인을 클릭해야 한다. 네티즌은 두 번 클릭에 번거로워지고, 메뉴를 보지 못한 채 가게만 고르는 방식이라 상품 정보가 전혀 없으니 다소 불편해진 것이다.

네이버 측은 선정성 배제와 언론사와 이용자 간 접점 확대를 이유로 들었다. 과연 그랬을까. 뉴스스탠드에 노출된 52개사의 뉴스박스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른바 메이저 신문. ‘코피나게 하는 볼륨 몸매’ ‘여 관광객 남친 앞 집단 성폭행’ ‘여 선배 연예인, 남 후배 중요 부위에…’ ‘벗을 땐 간절해…도와주세요’ ‘1초 뒤…음흉에서 허탈로’…. 한 신문은 절반 가까이 선정성 기사로 채웠다. 뉴스캐스트 때보다 더 위험해진 것이다.

전문일간지는 더했다. ‘H컵녀, 그라비아급 헉’ ‘흠~뻑 젖었네’ ‘D컵녀 풍만한 가슴이…’ ‘가슴이 커서 문제, 피겨샛별 위기!’ ‘내 주인이 돼 날 조련해줘’ ‘몸매 SNL 능가 후끈’….

중하위권 언론도 사정은 마찬가지. ‘초미니 밀착 드레스 후끈’ ‘남 개그맨 뭘 봤길래 코피가…’ ‘가슴 한쪽만 부풀자 당황’ ‘볼륨몸매에 입이 쩍’ ‘궁둥짝 두들기던 퇴폐적 공간’ ‘딸 집단 강간, 도끼로 범인 심판’ ‘한국인 이 약 먹으면, 놀라운 사실’….

이에 비해 방송 5사와 본지를 비롯한 20개가량의 언론사는 선정성 기사를 거의 싣지 않았다.

숱한 풍선효과 중 ‘집창촌을 철거하니 윤락가가 주택가에 침투했다’는 예시도 있다. 상품을 먼저 접하는 ‘뉴스캐스트’가 막을 내리고, 메뉴조차 없이 가게부터 찾는 뉴스스탠드 체제가 개막된 첫날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상당수 언론은 손님이 어느 집을 방문할지 몰라 ‘홍등(紅燈)’을 더 세게 밝힐 수밖에 없는 지경인 듯하다. 이러는 동안 뜻있는 언론사는 허탈감을 느껴야 했다. 악(惡)이 양(良)을 내쫓는 일도 벌어질 조짐이다.

언론사와 독자 간 접점을 확대했다 했지만, 사실 멀어졌다.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정보유통의 기본 생태는 언론법인과 독자 간 만남이 아니라 콘텐츠와 네티즌 간 만남이다.

네이버는 지식의 창고, 공론 마당, 교육, 게임장, 뉴스유통원, 전업주부의 휴식공간, 농민의 판로, 소외된 이웃의 한풀이 신문고다. 네이버 스스로도 ‘온라인 대한민국’으로서의 공익적 사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보유통의 투명하고 담백한 생태’ 조성을 위해 노력했음을 국민은 잘 안다. 지식의 옥석을 가렸고, 무책임한 댓글이 없도록 2중3중 게이트키퍼를 두었다.

뉴스유통에서는 ‘뉴스캐스트’라는 세계적으로 전무한 제도를 도입했다. 객관성과 자율성을 위해 포털의 편집 편견을 배제한 채 언론사별 8개씩 담백하게 제시하도록 했다. 네이버도 자랑스러워했다. 부작용이 있을 때 시민 옴부즈만제도 등 개선책을 속속 도입해 정화하던 중 뉴스스탠드가 도입된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창’이 된 네이버를 언론도, 기업도, 정치권도 존중해야 한다. 역지사지, 이미 네이버가 저질러버린 현재의 정보유통 생태, 공공적 매개자로서의 지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역사의 순리다.

네이버가 비합리적인 판단으로 언론사 ‘평판도’ 중심의 현 체제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면, 또 언론사 이름에서 풍기는 네티즌의 이념편향적 선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대다수 언론이 ‘조바심의 홍등’을 더욱 밝히지 않도록 정보유통의 생태를 개선해야 한다.

‘57회 신문의 날’을 코 앞에 두고 언론 스스로 홍등에 비유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저질 콘텐츠 경쟁이 개탄스러운 것이다. 생산자와 유통자 간, 생산자 간 금도를 지키는 상호 존중은 ‘언론의 사막화’를 극복할 중요한 기반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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