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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지는 ‘불만’ 쌓이는 ‘불안’…아파트가 아프다
55년간 사랑받은 대표 보금자리인데…층간소음 갈등·깡통주택 속출로 신음하는 이웃·가정…성범죄 발생비율도 증가세
1958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 ‘종암아파트’다. 이후로 55년이 흐르는 동안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았다. 아파트는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공간이자,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이들의 평생 ‘로망’ 같은 존재가 됐다. 즉 한국인의 대표 보금자리가 된 것이다. 그 보금자리에 범죄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수백명이 한 건물에 모여 살며 겪는 층간소음 등의 갈등이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산 목록 1위인 아파트가 부동산 시장 침체로 가격이 급락하면서 발생하는 ‘하우스푸어’ 문제는 일가족 동반 자살 등의 참극을 부르기도 한다. 가장 안전할 것으로 믿은 보금자리지만 적지 않은 강력범죄가 곳곳에 도사리기도 한다.

▶‘층간소음’ 갈등이 이웃 간 폭행ㆍ살인사건으로=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웃 간 언쟁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점차 아파트 세대수가 늘어나고 이웃 간 왕래가 사라지면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더욱 심각해졌다. 소음에 따른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웃의 집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두르는 일까지 발생하는 상황이다. 층간소음 갈등에서 시작된 강력 사건이 늘고 있다.

지난 8일 부산 북부경찰서는 8일 층간소음 문제로 윗집 모자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 미수)로 A(52) 씨를 구속했다. A 씨는 지난 7일 오후 10시50분께 부산 북구 모 임대아파트 8층에서 B(54) 씨와 B 씨의 어머니(86)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11일에는 대전 대덕구 대화동 모 아파트 3층에 사는 C(56) 씨가 윗집에서 계속 소음이 들리자 흉기를 들고 D(45) 씨를 찾아가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던 중 흉기로 D 씨의 왼쪽 가슴을 한 차례 찌른 혐의(살인 미수)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설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달 9일에도 서울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 아파트 6층에 살던 E(45) 씨가 윗집에서 아이들이 쿵쾅거리며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항의를 하다 집주인 F(33) 씨 형제와 시비가 붙었다. E 씨는 옥신각신하다가 F 씨를 흉기로 찌른 뒤 달아났고, F 씨는 결국 숨졌다. 실제로 층간소음 관련 민원도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이다. 지난해 개소한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3~12월에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은 7021건이다. 센터 개소 전인 2005~2011년 7년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층간소음 관련 민원 건수(1871건)의 4배 가까운 수치다. 이처럼 층간소음 분쟁과 사건이 끊이지 않는 건 마땅한 갈등 조정기구와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층간소음과 관련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화해를 주선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사소한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쌓이게 되고, 또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현실이 각박해지다 보니 이런 강력사건들도 더욱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짙어지는 자살의 그림자=2013년 현재의 한국 사회는 집이 있어도, 집이 없어도 고통을 받는다. 평생 모은 돈과 대출금을 보태 어렵게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집값이 폭락하면서 집을 팔아도 대출금마저 갚지 못하는 깡통아파트가 생겨나며 ‘하우스푸어’가 속출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최근 왕왕 발생하고 있다. 아파트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대출이자 부담은 늘어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족과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아파트를 무리해서 구입했다가 가계 빚에 시달린 한 30대 가장이 “함께 죽자”며 아내를 둔기로 내리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일도 있었다. 이 남성은 지난 2008년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은행으로부터 1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경기도 화성시에 한 소형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아파트값이 폭락했고, 매달 300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사채에 손을 댔다.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아내와 동반 자살을 마음먹고 둔기로 아내를 내리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집이 없어 고통받는 ‘렌트푸어’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북 지역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주민 여섯 명이 100일 동안 잇달아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주로 기초생활수급자로, 마땅한 거처가 없이 서울시내 영구임대아파트를 전전하거나 빚에 허덕이며 사는 가계빈곤층이었다.

▶아파트 내 치안 사각지대… 강력범죄 발생 빈번=단독주택 등 다른 형태의 주거시설에 비해 치안이 잘 이뤄진다는 점이 아파트의 장점으로 꼽혀왔지만 최근에는 아파트가 성범죄 등 강력범죄의 발생장소로 언급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손원진 경찰교육원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공동주택의 성폭력 실태 및 예방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전체 성폭력범죄 중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비율은 평균 5.2%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아파트 건물 안에서 발생한 비율이 70%로, 아파트단지의 외부 공간보다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내부 공간에서 발생한 성범죄 중 엘리베이터 주변이나 내부에서 발생한 범죄가 25%, 계단이 15%로 특히 취약했다. 아파트 내부에서도 강력범죄가 종종 발생하면서 엘리베이터나 계단 등에 조명이나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달라는 주민 건의도 늘어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아동 및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 중 아파트 복도나 계단에서 사건이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또 부녀자를 상대로 한 납치나 금품 갈취 등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일도 많다”며 “대부분 사람들이 집에 도착하면 긴장이 풀리기 쉬운데 이를 악용한다. 주로 아동이나 여성, 술에 취한 남성들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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