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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계와 과정 성찰한 청년작가들의 시선…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전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큼직한 수조 안에 금(金)덩어리처럼 보이는 황동 두꺼비가 들어앉았다. 상평통보를 잔뜩 발아래 깔고, 손으로는 황금알을 받쳐들고 있다. 황금알 아래에는 ‘금섬납재(金蟾納財)’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황금 두꺼비가 재물을 끌어모은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두꺼비 위쪽으로는 말발굽쇠이며 몽키스패너 같은 쇠붙이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조합이다.

이 엉뚱한 작품은 백정기 작가의 수조작업 ‘포춘 플레이팅(Fortune Plating)’이다. 작가는 전기의 플러스(+), 마이너스(-) 성질을 이용해 도금된 두꺼비의 누런 금박을 쇠붙이 쪽으로 옮겨가도록 했다. 시간이 흐르면 황금가루들이 쇠붙이들에게 들러붙게 된다. 황금만능 시대에 엄청난 상징성을 지닌 황동 두꺼비의 금박이, 일상의 하찮은 사물들에 입혀짐으로써 그 ‘상징성이 이동하는 과정’을 작가는 독특하게 시각화했다.

박제성의 작업 또한 이색적이다. 전시장의 흰 벽에 작은 종이들이 겹겹이 붙어 있다. 그런데 벽 앞에는 하늘색 가루가 소복히 쌓여있다. 흥미로운 점은 벽에 붙은 종이가 그냥 종이가 아니라, 표면을 사포로 긁어낸 1000원짜리 지폐라는 점이다. 벽 앞에 뿌려진 가루는 지폐를 긁어낼 때 나온 가루들이다. ‘의식-환원과 분리’라는 이 문제적 작업에서 작가는 화폐에 인쇄된 이미지를 사포로 지워, 돈을 한낱 종이로 환원시켰다. 이를 통해 물질만능시대 돈의 가치를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 새로운 개념의 작품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이 최근 개막한 ‘젊은 모색 2013’전의 출품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81년부터 독특한 실험정신을 지닌 젊은 작가들의 그룹전을 2년마다 개최해 왔다. 올해부터는 작가의 연령보다는 작품 제작 태도와 내용에 초점을 두고 매년 개최한다. 청년세대의 풍부한 상상력에서 발아돼 여러 갈래 해석이 가능한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써 이 시대 조형담론을 논의해 본다는 취지다.

이번 ‘젊은 모색 2013’에는 경험, 관계, 과정과 연관된 작업들이 선정됐다. 신체를 통해 세상과 관계맺기를 시도하는 박제성, 도시적 인간의 만남을 천착한 유현경과 김태동, 작품제작 과정에 참여자나 관객을 상정하는 구민자와 박재영, 실험과정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파고드는 백정기, 세계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김민애ㆍ심래정ㆍ하대준의 작업이 나왔다. 이들 작품은 오늘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예리하게 주시하면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김민애는 건축물의 간과된 공간에 엉뚱한 구조물(난간, 계단)을 만듦으로써 그 공간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 기이한 맥락은 곧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자기인식’이다. 사진작업을 하는 김태동은 차분한 사진들을 내놓았다. 이른 새벽 도시에서 마주친 사람을 찍은 사진들로, 익명화된 대도시 속 인간들은 도시의 감춰진 면모를 드러내듯 한결같이 외로운 모습이다. 


박재영은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권위가 인간을 얼마나 꼼짝달싹 못하게 했는지 풍자한 작업을 출품했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장치’를 만든 뒤 이 신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장을 만들어, 관객 참여를 독려 중이다. 제작사인 다운라이트(DownLeit)사는 새빨간 거짓말(a downright lie)을 축약한 단어.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에 대한 사회적 기제를 통찰한 작업이다.

인체 이미지에 골몰해 온 심래정은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관계와 남녀가 사랑을 하면서 변하는 신체구조를 다룬 흑백 작품을 내놓았다. 유현경은 대상의 외관이 아니라, 대상과의 관계에서 느낀 추상적 지점을 표현한 유화를 출품했다. 얼굴과 신체 묘사가 생략된 채 거친 붓놀림과 미묘한 색채만 남은 인물화는 결국 작가 내면의 또 다른 투영이다.

전시는 6월 23일까지. 성인 3000원. (02)2188-6000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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