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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 - 김화균> 조현문의 실험
오너의 자녀라고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오너의 자녀라고 해서 무한정 혜택을 주는 것은 더 바람직하지 않다‘. 조현문의 실험’이 재계의 고착화한 비합리적 승계 공식을 깨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조현문 효성 전 부사장의 행보가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효성그룹 내 직위를 모두 내려놓고 한 법무법인의 고문 변호사로 자리를 옮겼다. 조 부사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그는 1999년 효성 전략본부팀장으로 입사해 경영일선에서 나름대로 혁혁한 성과를 쌓았다. 조 부사장은 1996년 미국 하버드 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뉴욕 주 변호사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법률가로서의 전문성과 효성에서 10여년간 축적한 경영 노하우를 접목해 법조 분야에 매진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밝힌 퇴진의 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아직 물음표다. 재계 일부 호사가 역시 그의 퇴진이 경영권 승계 경쟁에서 밀려난 결과가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조 부사장의 퇴진이 관심을 끄는 것은 ‘오너의 자녀=경영 승계’라는 방정식에 변화를 주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조현문 부사장과 유사한 사례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이 대표적이다. 박 이사장은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자의 다섯째 아들이다. 박 이사장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 교수와 공직자의 길을 거쳤다. 물론 그룹 계열사의 지분은 갖고 있지만, 일찌감치 비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현재 한국 기업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높아가는 보호무역주의 장벽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외생 변수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승계 리스크’라는 내부의 위험이다. 창업세대를 거쳐 2세, 3세, 혹은 4세로 넘어가면서 ‘제대로 된 승계’가 ‘100년 기업’을 담보하는 가장 큰 내부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는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가 됐다.

우리 기업들의 승계 방정식은 이른바 ‘오너 승계’ 시스템이다. 기업을 개인의 재산으로 생각하고 이를 물려주는 관행이 정착돼 있다. 이러다 보니 무리수와 편법이 동원된다. 사실 경제민주화라는 화두가 소구력을 갖는 것도 바로 이 승계 과정에서 나타난 불투명성 탓이 크다.

오너 승계 관행은 능력 있는 전문 경영인의 부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도 작용한다. 오너의 자녀는 여전히 특례 입사에 압축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 30대 사장, 40대 부회장은 공식처럼 자리잡아가고 있다.

인도 최대의 기업인 타타그룹은 몇 년 전 회장직을 공모한 적이 있다. 자식이나 친척 등 집안에서 후계자를 꼭 정할 필요 없이, 능력이 있다면 밖에서도 들일 수 있다는 경영관이 우리로서 상상치도 못할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물론 한국과 기업문화가 다르다. 기업이 한 개인이나 혈족의 것이 아닌 사회의 것이라는 인도 특유의 기업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오너의 자녀라고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능력이 검증되고 과정만 투명하다면 기업의 안정성 측면에서 오너 승계가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오너의 자녀라고 해서 무한정 혜택을 주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조현문의 실험’이 재계의 고착화한 비합리적 승계 공식을 깨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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