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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정용덕> 국민은 ‘무대’ 뒤를 보고 싶어한다
향후5년 안정적 국정운영 위해선
국민 의사결정 참여욕구 충족
과반이상 국민신뢰 밑거름 삼아
개혁보다는 점진적 발전 바람직





국가행정을 지칭하는 용어 가운데 ‘블랙박스(black box)’라는 말이 있다. 사회로부터 다양한 요구나 지지 등이 ‘투입(input)’되면 국가행정이 그것을 정책으로 ‘전환(throughput)’하여 다시 사회로 ‘산출(output)’하는 것으로 보는 소위 ‘정치체계 분석이론’에서 유래된 일종의 학술 은어다. 여기서 국가행정을 ‘검은 상자’라는 의미의 블랙박스로 지칭하는 이유는 그 상자(즉 국가행정)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전환 과정을 밖에서는 여간해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용어가 1950~60년대 미국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그 나라도 국가행정의 투명성은 그리 높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 말의 유용성이 조금씩 줄어들 것 같다. 선ㆍ후진국을 막론하고 ‘투명성(transparency)’을 21세기에 국가행정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는 경향 때문이다. 국제연합(UN),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제시하는 각 나라의 국정능력(governability) 평가기준에 투명성이 반드시 포함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한국에서도 민주주의 이행 이후 국가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제도적 진전이 있었다. ‘금융실명제’ ‘정보공개법’ ‘행정절차법’ ‘공직자재산등록법’ 등이 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 구축도 국가행정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증대되는 호기심이다. 단순한 호기심의 수준을 넘어 국가행정 내부의 전환 과정에 더불어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요즈음 각종 텔레비전에서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대중공연예술가 선발 프로그램을 통해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과거에 시청자들은 각종 경연대회에서 기획가들이 사전에 결정해서 무대에 세워놓은 사람들의 공연을 수동적으로 시청해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경연 후보자들의 응모 및 공연 준비, 무대에서의 공연과 당락 및 심사위원들의 이유 설명, 공연이 끝나고 무대 밖으로 나아가 친지들과 얼싸안고 환호하거나 울며 아쉬워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오디션의 전 과정을 들여다보는 수준을 넘어, 시청자들도 평가 과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아예 프로그램 자체를 함께 만들어 가는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시청자들이 더 이상 막(curtain) 후에서 사전에 다 만들어 놓은 공연을 관람하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무대 뒤에서 전개되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무대를 함께 직접 꾸미는 능동적 주체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행정부가 출범한 지 1주일이 되었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 행정부에도 해결을 기다리는 온갖 크고 작은 국정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실제로 5년 단임의 박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이루어진 지금은 과거 개발연대와는 달리 큰 폭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그때 그때의 현안에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한국 발전에 벽돌 한 장 더 올려놓겠다는 겸허한 자세가 오히려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 후기민주주의 시대에는 그처럼 소박한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조차도 온갖 사회갈등이 불거질 것이며, 그것을 해소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국정운영 과정에서 그때 그때 불거지는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정책을 추진해 나아가려면 최소한 과반수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필요하다. 국정운영의 무대 뒤가 궁금하고 의사결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호기심과 참여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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