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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 심포니, 내한공연 속에 숨겨진 변화의 미학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오케스트라마다 색깔의 다름이 분명 있지만 지휘자와 협연자에 따라 그 공연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은 고유의 색도 중요하지만 공통의 감성을 찾는것 역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110년 전통의 오케스트라는 그 공통의 감성을 우연히 찾은 것인가. 지난 2월 28일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의 1년 만의 내한공연엔 그런 서양 악기와 곡 속에 숨겨진 동양적 감성을 전하는 변화의 순간들도 있었다. 런던 심포니가 가진 카멜레온 같은 힘이랄까.

단원들은 여느 유럽 오케스트라들처럼 질서있게 착석했고 악장의 등장에 이어 검정 연미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천천히 무대위에 섰다.


공연의 첫 시작은 영국의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의 전주곡 중 ‘새벽’, ‘일요일 아침’, ‘달빛’, ‘폭풍’이었다.

런던 심포니가 어떤 오케스트라였던가. 110년 전통을 카멜레온처럼 변화와 적응 속에 살았던 역사를 가진 이들은 고전적인 곡들부터 현대음악, 영화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들을 섭렵해 연주할만큼 변화무쌍한 힘을 지녔다.

이날 연주에서도 현악기가 동시에 뿜어내는 중우함과 흔들림 없는 관악기의 명확한 힘을 전달하며 그동안의 레코딩으로 듣는 것과 같은 곡의 완결성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하이팅크의 동작은 크고 격렬하진 않았지만 악단 못지않은 분명함이 있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던 런던 심포니와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와의 협연은 이날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 했다.

오케스트라의 등퇴장과 피아노 세팅 시간이 길게만 느껴질 정도로 모두가 기대에 부푼 가운데 피르스는 특유의 품이 넉넉한 자연 소재 의상을 입고 박수와 함께 등장했다.

아담한 체구, 단발머리, 낮은 굽의 신발, 편안한 의상의 그는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보다 꾸미지 않은 수수함으로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피르스와 하이팅크, 런던 심포니는 관객에게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7번을 통해 놀라움을 또 한 번 선사했다.

건반을 짚는 듯, 짚지 않는 듯, 피르스의 연주엔 격렬함과 무거움 대신 모차르트의 가벼움이 살아있었다. 절제하면서도 표현할 것은 놓치지 않는 건반 터치와 함께 미세하게 흔들리는 노장의 지휘도 절제가 있었다.

시종일관 편한 분위기 속에 연주를 이어간 하이팅크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잠시 편하게 의자에 편히 걸터앉아 쉬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3악장에서 그는 발랄한 손동작으로 지휘를 이어갔고 발랄함과 더불어 위트도 잘 표현한 호른의 연주도 눈에 띄었다.

넘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는 연주, 공자의 중용의 미를 깨달은 듯 모차르트의 가벼움과 여성적인 선율 속에 동양적 감성도 숨어있었다. 이어지는 박수갈채, 연주가 끝난 피르스는 두 손을 모아 공손히 고개숙여 인사했다.

84세의 하이팅크, 69세의 피르스, 110년 전통의 런던 심포니는 고전 레퍼토리를 잘 소화하며 오래됨과 원숙함의 미학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런던 심포니의 베토벤 7번은 회심의 레퍼토리, 공연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변화였다. 경쵀한 하이팅크의 지휘, 신나는 악단의 연주 속에 차분하고 장엄한 2악장이 이어졌고 3악장으로 들어선 연주 속에서도 감정은 넘치지 않았다. 지휘봉을 들지 않은 왼손 엄지와 검지를 모으며 보편적인 웅장함보다 비교적 부드러움이 살아있는 연주를 선사했다.



끝남과 동시에 관객의 박수와 환호는 끊이지 않았고 하이팅크는 연주가 만족스러웠던 듯 천천히 지휘자 단상에서 내려가며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수차례의 커튼콜 끝에 런던 심포니가 선택한 앵콜은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이었고 하이팅크는 이어지는 박수갈채에 악보를 들어보이고 퇴장하며 마지막까지 객석에 웃음을 선사하며 36년 만의 내한을 자축했다.

영국 최초의 단원 자치, 최초의 레코딩 작업, 휴대전화 벨소리 녹음, ‘스타워즈’, ‘인디애나 존스’ 등 영화음악 녹음, 재일 작곡가 양방언의 게임음악 연주 등 격동의 세월들을 변화로 이겨낸 런던 심포니는 이날 공연에서도 충분히 고전, 현대를 넘나든 레퍼토리로 객석에 변화의 미학을 선사했다.

그런 런던 심포니가 2014년, 3년 연속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다. 내년 3월 이들은 말러, 스트라빈스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의 곡으로 또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까.

ygmoon@heraldcorp.com

[사진제공=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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