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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가미술품은 ‘뉴럭셔리의 총아’ …극심한 불황에도 아트마켓은 호황
[헤럴드경제= 이영란 선임기자]전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유난히 활황을 보인 시장이 있다. 바로 ‘아트마켓’이다.

고가의 미술품을 거래하는 아트마켓은 지구촌을 뒤덮고 있는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승승장구 중이다. 각국의 최상위 부호들은 물론, 신흥부자들까지 합세해 유명작가의 미술품을 마치 주식 사듯 사들이고 있다. 이는 인기작가의 수작(秀作)의 경우 3~5년이상 보유하면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미술품경매사인 크리스티의 실적이 이를 방증한다. 뉴욕 런던 홍콩 등지에서 경매를 펼치는 크리스티는 지난해 총62억7000만달러(한화 약6조7064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창사(1776년)이래 최고기록(파운드화 실적으로 했을 경우)이자, 2011년에 비해 10% 증가한 수치다. 크리스티는 “지난해 세계 136개국 고객 중 신규고객이 19%에 이를정도로 신규구매자가 크게 늘었고, 인상파 등 근대미술은 물론 전후(戰後)및 현대미술까지 경합을 이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거래한 작품 중 686점이 100만달러(약10.7억원)이상의 가격에 거래됐으면, 이중 49점은 1000만달러(약 107억원)이상에 거래되는 등 경합을 이룬 고가작품이 많았다”고 밝혔다. 크리스티와 함께 세계 미술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소더비의 경매실적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소더비 또한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가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1억1992만달러(당시 한화 약 1356억원)에 낙찰되는 등 기념비적인 거래가 많았기에 크리스티에 필적할 수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미술전문지 ‘아트뉴스’에 의해 ‘세계의 영향력있는 컬렉터’에 여러차례 선정된바 있는 김창일 아라리오그룹 회장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아트마켓의 열기가 뜨거운 것은 크리스티, 소더비같은 유력경매사가 희귀한 미술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기 때문이다. 사실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작가의 마음에 드는 신작을 사는 것은 이제 거의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인기작가의 좋은 그림은 갤러리에 내걸리기도 전에 임자가 정해지니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크리스티, 소더비같은 곳에서 희소성있는 작품이 나왔다고 하면 수집가와 투자자들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나 역시 지난해 약 30점의 미술품 응찰에(전화경매 등을 통해) 참여했으나, 경합이 워낙 치열해 불과 2점밖에 구입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추정가를 약30% 상회하는 선에서 거래가 이뤄지곤 했으나 최근에는 이를 훌쩍 뛰어넘는 예가 무척 많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난해 글로벌 아트마켓은 기대 이상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작년초에만 해도 유럽발 재정위기가 워낙 극심해 글로벌 아트마켓 또한 반토막이 날 것으로 예견됐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물론 지난 2010년 세계 경매시장의 41%를 기록하며 기염을 토했던 중국은 다소 침체를 보였다. 크리스티 또한 홍콩의 아시아미술품 거래액은 2011년에 비해 다소 하락한 양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론 괄목할만한 실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막대한 유동자산을 지닌 슈퍼리치들이 주식, 부동산 등이 침체를 이루자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고가 미술품 수집에 앞다퉈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일머니로 무장한 카타르는 국왕과 공주가 직접 나서 후기인상파 거장 폴 세잔의 회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을 2억5000만달러(당시 한화 약 2800억원)에 구매(가고시안및 아쿠아밸라 화랑이 이 거래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큰 화제를 모았다. 달러는 주체할 수 없을정도로 많은 카타르는 문화예술적으론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컨텐츠가 없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걸작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곧 미술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카타르 국왕과 공주 곁에는, 크리스티를 수십년간 이끌었던 에돌만 전(前) 크리스티 회장이 자문역으로 나서 투자할만한 고가의 미술품을 쪽집개 찍듯 바로바로 컨설팅하고 있다. 


또 중동의 왕족 뿐 아니라 미국및 유럽, 러시아 부호들도 여전히 고가그림 수집에 나서 세계 미술시장은 ‘경기한파의 무풍지대’로 부상한 셈이다.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인 톰 행크스 부부를 비롯해 스티브 마틴, 실베스타 스탤론은 물론이고 영화제작자인 데이비드 게펜, 헷지펀드 매니저인 스티븐 코언, 부동산 거물인 앨리 브로드 등은 미술품 수집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앨리 브로드 같은 부호는 경매시장에서 유명작품을 낙찰받아, 자신의 홈타운인 LA카운티 미술관 등에 작품을 기부하곤 한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자신의 안방에 걸어놓기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라, 일종의 사회공헌 내지는 메세나 차원에서 미술품을 수집하는 이들 또한 적지않은 것이다.

예술경영 컨설턴트인 김민주 리드&리더 대표는 “희소성을 지닌 고가의 미술품은 기존의 전통적인 럭셔리상품(고급자동차, 명품패션)을 충분히 경험한 부호들이 마지막으로 추구하는 아이템으로, ‘뉴럭셔리의 정점’에 해당된다”며 앞으로 이같은 트렌드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유명경매사의 온라인경매 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크리스티의 경우 지난해 온라인을 통한 작품구매자가 2011년에 비해 11% 증가해 새해부터는 이 부문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앤디 워홀 재단이 마지막까지 보유하고 있는 워홀의 드로잉이며 페인팅, 사진 등을 온라인 경매 등을 판매하려 하는 것이 그 예다. 결국 이같은 대중화 전략은 ‘럭셔리의 총아’로 꼽히는 미술품에 대해 수집가층을 더욱 확산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한정된 희귀작품을 둘러쌓고 벌이는 슈퍼리치들의 경쟁은 새해에도 더욱 뜨거울 전망이다. 일각에선 ‘돈과 예술의 거리낌없는 결합’ ‘진정한 미술은 간데 없고 오로지 시장미술만 판친다’며 지탄하고 있지만, 희소성있는 작품을 둘러싼 수집가들의 투자열기는 온갖 악재에도 도도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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