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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박달재--비련의 ‘울고넘는 박달재’ 이젠 ‘웃고’ 넘는다
[헤럴드경제: 제천=남민 기자]조선 중기, 경상도 청년 박달(朴達)은 한양 과거길에 험준한 고개 아랫마을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마침 그날 밤 주인집 딸 금봉이와 눈이 맞아 둘은 사랑을 약속한다.

한양 간 박달은 하세월 돌아오지 않는다. 금봉이는 매일 고갯마루에 올라 성황당에서 기도하지만 결국 상사병이 도져 죽는다.

그리고 딱 3일 후 박달은 낙방거사로 도착한다. 금봉의 사연을 들은 박달이 성황당에 오르자 저만치 앞에 금봉이가 나타났다. 달려가 끌어안으려는 순간 금봉이는 사라지고 박달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게 된다. 환영을 본 것이었다.

박달재 정상에 있는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 조각상

‘비련의 고개’ 박달재는 박달의 이름을 딴 고개(재)로 충북 제천에서 충주와 장호원으로 넘어가는 험준한 산길이다. 지난 1960년대 이후 공전의 히트를 친 대중가요 ‘울고넘는 박달재’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노래의 탄생 배경은 따로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박달재를 찾아 여느 때와 같이 새벽길을 나섰다. 아직 잠든 도시를 조용히 빠져나가는 사이, 차 안에는 작은 정적을 깨뜨리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른다. “너를 향한 내 맘이 너무 가엽다…미치도록 그리운 사랑아…아무리 울어봐도…지울 수도 없는 내 사랑아” 지금 막 혜성 처럼 등장한 따끈따끈한 남자 신인가수 신재의 ‘맘이 너무 아프다’ 라고 한다. 남자가수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호소력있게 부를 수 있을까. 게다가 내가 지금 향하는 이별의 고갯길 박달재의 사연을 마치 예언이라도 한 듯 이 노랫말과 가락은 그 분위기 그대로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가사가 머릿 속에 꽂혀버렸다.

기도하는 금봉이. 성황당. 박달재 입구문, 박달재 노래비

박달재의 사연을 잘 아는 분을 수소문했는데, 마침 지난해 작고하신 ‘대중가요의 대부’ 반야월 선생님과 교분이 있었던 황금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황 선생님 제천에서 언론과 관광에 종사하시는데 반야월 선생이 제천 명예시민이 돼 자주 찾으면서 만남이 있었고 노랫말 지은 배경도 직접 들려주셨다고 했다.

노래 탄생 배경은 이렇다. 반야월(본명 박창오) 선생이 1964년 지방순회공연 차 박달재를 오르다 버스가 고장나 멈췄다. 잠시 산책을 하는데 보슬비가 내리는 저 앞에 젊은 남녀가 애처로운 이별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떠나자 반야월 선생이 여인에게 다가가 사연을 물었다. “남편이 서울로 돈벌러 떠나 잠시 헤어지게 돼 슬프다” 며 가다가 먹으라고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줬다고 했다.

반야월 선생 눈 앞에서 벌어진 이들의 모습이 박달과 금봉의 이별을 그대로 연상케하는 그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선생은 서울로 돌아가 몇 달 후 어느날 문득 이 얘기가 생각나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천둥산(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필자가 찾은 날 도로 외에는 온통 눈밭이었다. 정상 휴게소에서 크게 흘러나오는 구슬픈 이 노래는 멈출 줄 모른다. 곳곳에 박달과 금봉의 애처로운 사랑을 그린 조각작품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박달과 금봉이 그랬고, 서울로 돈 벌러간 젊은 남편이 그랬고, 충주에서 제천으로 시집간 그 옛날 새댁이 그랬듯이 이 고개는 눈물없이 넘지 못했다.

지금은 38번 국도가 박달재 밑으로 터널을 내서 휙 지나가버린다. 이 옛길은 관광도로로 남아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만의 장소가 되고 있다. 노랫말에 나오는 천둥산은 천등산을 말하는데 실제 박달재는 천등산의 옆 시랑산에 있다.

코믹하게 생긴 나무조각상들이 오솔길을 안내하고 있다.

필자와 함께 자리를 한 제천시 관광과 심상일 주사는 눈물없이 못넘었던 이 슬픈 이별의 고개를 앞으로는 ‘사랑이 꼭 이루어지는 고개’로 새로운 스토리텔링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못다한 사랑, 한이 서린 그 옛날 이 고개, 이젠 이곳에 오면 꼭 사랑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더 이상 울지않게, ‘웃고넘는 박달재’를 만들겠다고 했다. 거듭날 박달재에 어떤 컨텐츠가 담길지 사뭇 궁금해진다.

박달과 금봉이의 동상이 있는 산길로 걸으니 참으로 이상한 목각이 줄을 서서 길을 안내한다. 발목 위까지 눈에 빠지는 오솔길이지만 너무나도 재밌는 표정의 목각들을 보노라니 미끄러져 넘어져도 마냥 즐겁다. 목각이 종점을 안내한 곳은 뜻밖의 천막으로 씌워진 1000년 느티나무 암자다. 신도도 별로 없는 한 스님(성각)이 만든 ‘천년목찰 목굴암’ ‘천년목찰 오백나한전’이다. 나무를 직접 조각해 만든 혀를 내두를 작품으로, 느티나무 속을 도려내 조각해 놓은 것이다. 나무에 뚫린 엄지손가락만한 구멍으로 새어나오는 황금빛나는 부처님의 얼굴은 예술이었다. 박달재 관광의 최고 명소 중 하나가 됐다.

1000년 느티나무 속을 긁어 1인암자를 만들었는데 엄지손가락 만한 구멍 사이로 부처님 얼굴이 비친다.
느티나무 속에 500나한을 조각한 성각 스님.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황 선생님 소개로 스님과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도 가졌다. 자그마한 박스 집 속에서 거주하신다. 박달과 금봉이의 애틋한 사랑(그런 정신)이 좋아 이곳에 15년째 머문다고 하셨다. 물질만능 세태를 비판하시면서 열변을 토하신다. 스님의 목각 예술에 놀라울 따름이다. 말을 끊지 않으면 하루종일 열변을 토하실 스님이셨다.

황 선생님은 여기 조각들은 매우 작품성이 뛰어나고 귀한 것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빛’을 좀 보게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돈도 없고 땅도 없고 살짝 ‘움막살이’ 신세란다. 커다란 통느티나무 속을 긁어내 1인 암자를 만든 것인데 비에 맞아 썩기 때문에 그냥 천막처럼 둘러 감아 살풍경이 된 채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한쪽켠에 팔각정 처럼 생긴 집에 들렀다. ‘도깨비방망이’집이다. 간판은 ‘박달재 나무향기 차향기 집’으로 돼 있다. 서울서 이주해온 박천식 사장 부부가 웰빙차(茶)와 각종 목공예품을 만들어 전시, 판매하는데 특히 도깨비 방망이가 눈길을 끈다. 이건 ‘돈이 필요한’ 사람에겐 돈을 주는 방망이가 아닌가. 

정상 한켠에 자리한 도깨비방망이집. 부(富)를 안겨다 준다고 한다.

열쇠고리부터 1m가 넘는 크기까지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데 불티나게 팔려나간다고 한다. 행운의 상징으로 가보(家寶)로도 소장할 만 했다. 작은 방망이는 들고다니면서 지압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개인부터 식당하는 사람, 회사 등에서도 사업번창을 기원하는 아이템으로 인기가 높은데 재료 구하기가 만만찮다고 한다.

해발 500m 이상의 물이 있는 곳에서 자라는 다릅나무(아카시아과)가 재료인데 벌목할 수 없는 특수목이라 간벌때 구해서 만든다고 한다. 박 사장은 이 나무는 민간요법으로 갑상선암 치료에 효험이 좋아 차로 다려서 마시면 좋다고 소개했다.

정상에는 고려시대때 몽골군을 맞아 이곳에서 승리를 이끈 김취려 장군을 기리는 안국사도 있다.

또 박달재 아래 계곡에는 ‘자연치유의 도시’ 제천답게 리솜포레스트가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일반관광객의 경우 최신 시설의 스파를 즐길 수 있다. 숙박은 회원권이 있어야 가능하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의 별장이 나오는 명소다. 스파를 즐기면서 창 밖을 내다보면 호젓한 산 속의 경치가 일품이다. 제천의 또 하나의 멋진 힐링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멋진 관광을 마친 후 우리는 박달재 아랫마을 봉양읍에서 ‘국가대표 농부’ 이해극 선생이 20년 유기농 야채를 제공한다는 식당을 찾았다. 철길을 건너 산길로 한참 들어가니 ‘유기농 쌈밥 산아래’(043-646-3233)라는 식당이 나온다. 

전통 유기농 쌈밥에 국산 우렁이를 빼곡히 채워주는 '유기농쌈밥 산아래'식당. 강은순 대표가 야채에 대해 꼼꼼히 설명해주고 있다.

잠롱 전 방콕시장도 찾아 유명세를 탄 집으로 우리는 강은순 대표가 추천한 국산 우렁으로 맛을 낸 우렁쌈밥을 시켰는데 과연 별미였다. 강 대표는 TV 등 이미 매스컴도 많이 탄 인물로 필자의 손을 잡아끌고 가더니 야채 쌀 식재료 등을 직접 보여주며 자신있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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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 선생 가요박물관: 박달재에는 반야월 선생의 가요박물관이 건립 추진되고 있다. 조성되면 반야월 선생의 모든 유품 등이 전시되고 제천 목천사에 임시 보관 중인 유골함도 이곳으로 옮겨올 예정이라고 한다. 반야월 선생은 마산이 고향이지만 제천시에 묻히기를 원했고 모든 유품도 제천시에 기증 서약했었다.

또 생전에 ‘울고넘는 박달재’ 4절을 만들고 발표를 못한 상태였는데 지난해 제 16회 박달가요제에서 그 따님이신 박희라 여사가 4절을 직접 부르며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국제슬로시티로 선정된 제천시는 이에 걸맞게 박달재의 원래 옛길도 복원사업을 서두르고 있는데 앞으로 새로운 컨텐츠가 채워지면 더욱 흥미로운 관광지가 될 듯 싶다.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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