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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많던 ‘미술품양도세’,23년 공방끝에 시행..그 파장은?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무려 23년간 논란을 거듭해온 ‘미술품 양도소득세’가 새해부터 시행에 돌입했다.
올해부터는 미술품을 구입했다가 되팔아 양도차익이 생겼을 경우 차익의 20%를 세금(기타소득세)으로 내야 한다. 부과대상은 6000만원이 넘는 작고작가의 미술품(문화재및 유물 포함)이다. 만약 3000만원에 구입했던 그림을 수년간 보유했다가 6000만원에 되팔았을 경우 매매차익 3000만원의 20%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미술품 양도세는 지난 1990년 정부에 의해 법제화됐으나 ‘이제 겨우 걸음마단계에 돌입한 미술시장을 죽여선 안된다’는 여론에 밀려 시행이 여러차례 미뤄졌다. 그러나 조세당국은 “소득있는 곳에 세금 있다”며 조세형평성 차원에서도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미술계는 국내 미술시장의 취약성 등을 내세우며 맞서왔다. 양측이 지리한 공방을 거듭한 끝에 올해 이 법안은 시행에 들어갔다.

실제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미술품 양도소득세가 시행되고 있다. 작품 거래에 의한 매매차익에 대해 보유연한에 따라 차등한 세율을 매기며 세금을 징수하고 있는 것. 하지만 선진국과 우리는 미술계 환경과 시장 규모 등에서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을 간과할 순 없다.
한국은 무역거래로는 세계 8위권이라고 하지만 미술품 시장은 연간 약400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상황이다. 이는 중국의 유명작가 치바이스(齊白石 1860~1957)의 최고낙찰가 그림 5~6점 가격에 불과하다. 더구나 한국과 경제규모및 문화의식 수준이 엇비슷한 싱가포르, 홍콩, 뉴질랜드 등은 양도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 중에도 스위스 등의 국가 또한 양도세가 시행되지않고 있다.



또다른 문제점은 국내 미술시장의 경우 개인 컬렉터의 비중이 무려 88%에 달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선진국은 컬렉터의 약 절반이 기업 등 법인 컬렉터이다. 기업과 기관들이 활발히 미술품을 구입해 문화사업을 펼치는 등 메세나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
반면에 우리는 경제력에 비해 미술시장은 대단히 취약한 구조다. 미술계가 ‘선(先) 시장육성, 후(後) 세금부과’를 외쳐온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양도소득세 시행이 알려지며 미술품 경매및 화랑에서의 고가 작품 거래가 눈에 띌 정도로 줄었다. 또 작품거래가 위축되면서 중견및 원로, 작고작가 전시회도 크게 줄고 있다. 화랑들은 “최근 1~2년새 고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하루종일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거래및 전시 위축이 작가들의 창작열기까지 식게 해, K팝 등이 세계로 활발히 뻗어나가고 있는 것과 달리 미술계는 제자리걸음만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물론 이같은 시장 위축은 미술계 책임도 크다. 잇따른 위작 시비와 일부 투명하지 못한 거래시스템, 미술품이 비자금 조성의 도구로 쓰인다는 혐의 등으로부터 미술계 또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하지만 양도소득세 부과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미술품을 구입해 이를 생활 속에서 감상하고 싶어도 과세당국이 나의 거래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림,사지않으면 그만이지. 없어도 대세(?)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라는 심리가 본능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확실하고 폼 나는 명품백이며 외제자동차 구입, 호화여행을 즐기겠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제 미술은 문화를 넘어 산업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는 시대다. 영국의 경우 미술및 디자인 등의 창조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정책을 수립해 시행 중이다. 또 미술품 구매를 촉진시키는 ‘Own Art with a 0% loan’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Own Art Loan이란 일반 국민이 100~2000파운드짜리 작품을 구입할 경우 무이자로 20만~370만원을 대출해주는 제도다. 이같은 제도를 영국 내 250개 화랑에서 시행하자 영국민 중 예술품 구입자가 전체의 10~13%(약490만명)로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어지간한 집에는 작품들이 걸리게 된 셈이다.
중국 또한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미술시장의 역할에 주목하며 국가 차원의 미술시장 육성책을 만들어 시행하기 시작했다. 홍콩및 싱가포르도 아트 허브 구축에 경쟁적으로 뛰어든바 있다.

한편 조세당국이 미술품 양도세로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은 연간 약 20억~30억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작고화가및 고가작품의 거래가 크게 위축된 데다 경기침체로 그림값이 반토막난 시점이어서 그 정도 액수도 나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결국 세수증대에는 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규모인 셈이다. 실익은 별반 없으면서 미술시장을 얼어붙게 하는 요소라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미술품 거래의 투명성 확보 등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결국 미술품 양도세가 시장이 활력을 잃은 상황에서 강행된만큼 미술계 창작열기를 제고하기 위해서도 다각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지원책이 서둘러 수립되어야 한다. ‘세금 부과’만 선진국형이고, ‘지원및 육성책’은 후진국형이어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술품 컬렉터를 문화예술계 패트론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대다수 아트 컬렉터들은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작품을 구입해 생활 속에서 이를 음미하고, 즐기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꾸준히 모은 수집품은 대개 미술관에 기증되거나, 개인미술관 건립 등으로 발전되는 예가 많다. 그러니 이들의 활동에 박수를 보내고, 독려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컬렉터를 죄인 취급해서는 문화예술계 풍토가 선진화될 리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미술품을 수집하는 행위을 백안시하는 측면이 많다. ‘가진 자들의 한가한 향유’쯤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혼신을 다해 만든 작품을 누군가는 사줘야 그들이 다시 창작에 몰입할 수 있다. 한국 미술문화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멋진 패트론’은 꼭 있어야 한다.

아울러 척박한 미술계 환경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대책도 시급하다. 이를테면 미술품을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할 경우 획기적인 세금 혜택을 준다든지, 기업이 미술품을 구입할 경우 손금처리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한도액을 현실화한다든지 하는 대책이 고려돼야 한다.
문화예술의 가치와 비전은 고양시키면서 세금도 걷는 슬기롭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의 실행이 절실한 상황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까지 태워선 곤란하니 말이다.[사진 이앤아트(ENart), 마니프(MANIF)]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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