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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 - 이해준의 '희망가족'> 온난화의 비극 보여주는…‘검은 빙하’ 는 눈물을 멈출수 있을까
<33>‘ 남미의 스위스’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빙하 녹은 물, 거대한 호수 형성
검은빛 호수엔 화산재 빙하가 둥둥

스위스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도시
아르헨만의 독창성 없어 아쉬움으로



[바릴로체=이해준 문화부장] 끝없는 팜파스 황무지의 연속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부 파타고니아의 바릴로체까지 거리는 1570㎞. 버스는 오후 7시10분 출발해 다음날 오후 4시까지 21시간 달렸다. 아열대 숲과 소 방목장은 이내 사라지고, 새벽부터는 거칠고 메마른 황무지만 펼쳐졌다. 똑같은 풍경이 몇시간 이어졌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산과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머나먼 곳, 안데스산맥 서쪽 자락에 있는 바릴로체를 방문한 것은 이곳이 아르헨티나에서 이구아수 폭포 다음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미 여행 도중에 만난 아르헨티나 출신의 여행자도 한결같이 바릴로체가 가장 아름답다며 강력 추천했다. 필자도 여기서부터 남미의 등뼈인 안데스산맥을 지그재그로 넘으면서 칠레~볼리비아~페루로 여행하고 싶었다.

역시 바릴로체엔 볼거리가 많았다. 칠레와 접한 트로나도르(Tronador) 산의 ‘검은 빙하’는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지구온난화 문제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바릴로체 타운과 인근 호숫가 마을은 ‘작은 스위스’라는 별명에 걸맞게 산과 호수, 숲, 주택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유럽풍 마을은 무언가 현재의 아르헨티나에 걸맞지 않는 이질감을 주었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전지구적 문제와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동시에 들여다본 의미있는 여정이었다.

 
트로나도르 산 정상과 계곡을 덮고 있는‘ 검은 빙하’. 20~30년 전에만 해도 전망대 앞까지 빙하로 덮여 있었지만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화산재를 머금은 거무칙칙한 호수가 만들어져 있다.

▶녹아내리는 ‘검은 빙하’, 온난화의 현장=바릴로체에 도착한 다음날 칠레와의 국경 지역에 있는 트로나도르 산 트레킹 관광에 나섰다. 1930년대 이후 관광지로 본격 개발된 바릴로체엔 나후엘 후아피 국립공원을 비롯해 많은 관광지가 있으며, 다양한 관광 상품이 개발돼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있고 긴 코스가 검은 빙하를 돌아보는 트로나도르 탐방 코스였다.

아르헨티나 여행자 10여명과 필자를 태운 승합차는 호수와 숲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 트로나도르 산으로 향했다. 바릴로체에서 가장 큰 나후엘 후아피 호수에 이어 구티에레스, 마스카르디 호수를 지나자 본격적인 산악지대가 펼쳐졌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이 시야를 방해했지만 수정처럼 맑은 호수와 멀리 보이는 설산, 울창한 숲, 계곡과 바위가 잘 어울렸다.

후아피 호수 지역과 트로나도르 산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먼저 193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호수와 산 정상의 검은 빙하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그 속의 각종 동식물이 생태적 가치가 크고, 특히 검은 빙하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곳이다.

산 중턱에 있는 작은 폭포를 거쳐 공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산을 달리자 드디어 검은 빙하가 나타났다. 높이 3478m의 산 정상 부위와 계곡을 덮고 있는 빙하다. 빙하는 해발 2100m 지점부터 산꼭대기로 이어졌다. 이곳이 남위 43도로 극지방이 아니고 해발고도도 아주 높지 않은데도 빙하가 형성돼 있는 것이 신기했다.

가이드인 마리사는 “수백만년 전 빙하기 때 형성된 두텁고 견고한 얼음층이 산과 계곡을 덮고 있어 눈이나 얼음이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빙하가 검게 된 것은 이곳의 화산활동이 지속돼 화산재와 자갈, 흙 등이 빙하를 덮었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일부 눈과 얼음이 녹지만, 그 위를 덮은 화산재는 그대로 남아 빙하의 색깔을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설산은 살아있었다. ‘쩡! 쩡!’하면서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가 계곡에 간간이 울려 퍼졌다. 가끔 산 정상 부위에 두텁게 쌓여 있던 눈이 하얀 분말을 하늘에 뿌리며 절벽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산이 살아서 숨을 쉬고, 꿈틀거리고,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수백만년을 지내면서 눈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돌처럼 단단해져 빙하가 된 것이다. 절로 경건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 빙하는 울고 있었다. 빙하가 아래쪽에서부터 무참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빙하 녹은 물이 계곡 아래에 큰 호수를 만들었는데,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가 화산재로 거무튀튀해진 호수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10년 동안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마리사는 “20~30년 전에만 해도 전망대가 있는 호수 끝까지 빙하로 덮여 있었지만 지금은 빙하가 녹아 호수가 됐다”며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 변화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대 세계문명 전체가 초래한 재앙”이라고 말했다.

화석에너지에 의존한 개발과 이로 인한 환경파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검은 빙하가 흘리는 눈물은 지구촌 곳곳에서 흘리는 눈물의 일부일 것이다. 이 눈물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대가는 인류에게 돌아올 것이다.

▶‘작은 스위스’에 깃든 아르헨티나의 우수=인근 지역을 포함해 인구가 10만명인 바릴로체는 첫 인상부터 아르헨티나의 여느 도시와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크고 작은 초콜릿 가게와 맥주집이 즐비했다. ‘아르헨티나에 웬 초콜릿과 맥주?’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건물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유럽 중북부 스타일이었다.

거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이곳은 남미가 1500년대 초 이후 스페인 식민지배를 받을 당시엔 거의 개발되지 않다가 1800년대 말~1900년대 초 스위스와 독일 이민자가 몰려들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이들은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면서 집단 거주지역인 콜로니(colony)를 형성했다. 자연 속에 흩어져 살던 원주민은 쫓겨났고, 이민자가 새 주인이 되면서 기존 아르헨티나와 다른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특히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유럽에서 전범 청산 작업이 진행되자 나치주의자가 대거 이곳으로 도피했다. 2차 세계대전의 원흉 히틀러가 이곳으로 피신해 수년간 살았다는 주장이 대두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델 투리스타(Del Turista) 초콜릿 상점에 들어갔다. 가장 큰 상점으로, 다양한 초콜릿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한 봉지 사서 맛을 보았으나 바릴로체만의 특별한 맛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유럽 스타일을 동경하는 아르헨티나인에겐 인기 만점인 곳이다. 이국적인 풍취와 상품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아르헨티나 여행자가 쉬지 않고 몰려들었다.

바릴로체 도착 셋째날 네후엘 후아피 호숫가의 언덕인 체로 콤파나리오로 향했다. 바릴로체가 접하고 있는 호수와 이를 둘러싼 산, 호숫가의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여기엔 자전거 주행 코스도 유명한데, 날씨가 스산해 콤파나리오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스키장의 리프트와 같은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가니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가장 큰 호수인 나후엘 후아피 호수를 비롯해 크고 작은 호수가 끝없이 이어져 있고, 주변으로는 숲과 마을이 아름답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멀리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이 신령스럽게 보였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나 할슈타트, 스위스의 호수마을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만의 독창적인 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다. 다국적 문화의 집합체가 아르헨티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다양성이 국가 발전의 에너지로 통합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은 이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느끼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유사(類似), 콰시(quasi-), 아(亞) 유럽문화 아닌가.

치욕스러운 식민통치의 역사를 기억하는 한민족의 후예라 그런지 이민자 거주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콜로니’라는 말이 그 식민지 이미지와 겹쳤다. 아르헨티나에는 그 식민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는 듯했다. 국민은 남미의 전통보다 유럽 콜로니스트의 후예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바릴로체가 전형적인 곳으로,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여정이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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