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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허남경 테크빌 대표…정미소 아들이 고속철도 신호제어시스템 국산화 주역으로
[헤럴드경제=박도제 기자]1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72번째 수상자인 허남경(사진) 대표는 22년간 철도 신호시스템을 국산화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는데 앞장서온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CEO)이다.

허 대표가 이끄는 테크빌은 지난 2001년 설립된 회사로 프랑스의 앞선 KTX 신호제어 기술을 성공적으로 이전 받고, 더 나아가 국내 기술로 KTX 시스템 유지보수 체계를 개선해서 KTX를 안전하게 운행하는데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열차 무인운전 시스템의 열차종합제어장치(TCMS콘솔)를 개발해 신분당선에 공급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약 10년 간 철도 시스템 설계기술을 바탕으로 철도 신호분야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제작 기술을 선도해왔다.

국내 철도 시스템에 100% 국산화된 기술을 공급하고, 해외철도 건설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능력을 배양해 세계 철도 시장을 꿈꾸는 허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정미소를 운영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도와 정미소의 기계를 만졌다.

전기와 기계에 흥미를 느낀 그는 중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부산기계공고에 입학하면서 기술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국내 최초로 독일식 실업교육 과정을 도입한 부산기계공고에서 허 대표는 동력배선 직종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을 수 있었다. 1학년 때 6개월간 전기와 기계 공통교과를 배우면서 1학년 2학기 때 전기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처음 실습을 하는데 학생들에게 각각 나사못 10개를 주고 드라이버로 박아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제가 50명 중에 2등을 했어요. 작은 일이었지만 2등을 했다는데 놀랐습니다. 그 때 저에게 남다른 손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하루 종일 학교에서 회로 제작 기술을 익혔다. 자신이 직접 회로를 설계하고, 그 회로대로 기기를 만들면 생각대로 작동하는 게 신기해서 시간가는줄 몰랐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그 한 가지 일에 몰두한 덕에 허 대표는 동력배선 직종에서 학교의 기능경기대회 대표선수로 발탁됐다. 임종두 선생님의 신뢰와 열정적인 기술 지도를 통해서 고3때는 전국 전국기능경기대회 동력배선 직종에서 1위를 했고, 허 대표는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 후보 선수로 금성사(현 LG전자)에 스카우트 되기도 했다.

평가전을 통과하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년간 합숙 훈련을 했다. 서울대학교 전자과 황의융 교수는 허 대표의 뛰어난 실력을 알아보았다. 황 교수는 훈련과정 중 최초 평가에서 낙제점을 주었다. 이 덕분에 허 대표는 자만하지 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 교수님께서 저를 동력배선 직종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자로 만들기 위해 하셨던 독특한 훈련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황 교수는 모든 기술의 이론적 밑바탕을 강조하면서 기술과 이론을 습득하게 도왔다. 또한 촌놈에서 대학교 사환을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가 된 자신의 인생 역정을 이야기해주며 허 대표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허 대표는 ’78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동력배선 직종에 1위로 입상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능올림픽에 나가면 전선 수백 개를 연결해 복잡한 회로를 만들었는데 외관은 비슷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실격이죠. 하지만 제가 만들면 항상 작동합니다. 선배님과 선생님들께 성실히 기술을 전수받았고, 저에게 맞춰 직접 만든 검사기로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철저하게 확인을 하거든요.”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었지만 금성사에 돌아와 현업에 배치되어 업무를 수행하면서 부족한 점을 느꼈다. 허 대표는 대학에 진학해 전기공학 공부를 더 하고 회사로 돌아오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1년간 열심히 준비해 부산대학교 전기과에 입학한다. 허대표는 이미 공고에서의 학습과 국제기능올림픽 준비를 통해 이론적 배경과 실무 능력이 갖춰진 상태였다. 대학에서 회로 제작으로 허 대표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실습 시간에는 조교를 대신해 회로를 제작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허 대표는 대학에서 공고 출신들이 부족한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다. 영어 원서된 전공서적으로 공부하며 부족한 영어 실력을 보완할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금성산전(현 LS산전) 오산공장 설계실에서 인턴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제조업체에서 설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금성산전에 입사했다.

허 대표는 금성산전 중앙연구소의 시스템 연구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금성산전연구소에서 포항종합제철소, 발전소, 화학공장 등의 프로세서 제어장치인 분산제어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3년 만에 분산제어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소속팀이 그 해 장영실상을 받게 되었다. 이 후 금성산전에서 경부선철도 열차집중제어장치를 미국에서 도입하며 허 대표는 철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철도관제센터의 시초자로 허 대표는 미국에서 4개월간 교육을 받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서울, 대구, 부산의 도시철도 열차집중제어장치를 국내 기술로 구축하는 사업을 하게 되었다. 이후 1994년 경부고속철도 건설 사업이 계획되고 프랑스에서 TGV를 도입하며 허 대표가 근무하던 금성산전이 국내 기술이전 담당사로 선정되었다. 허 대표는 프랑스에서 5개월간 교육을 받으며 기술자로서 능력을 키웠다.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회사가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허 대표는 팀원 중 한 명이라도 더 구제하기 위해 오산공장의 설계팀장인 자신이 자진해 회사를 떠났다. 고속철도 신호제어시스템 담당으로 프랑스에서 기술이전을 받은 당사자로 허 대표는 경부고속철도를 추진하기 위해 구성된 컨소시엄회사인 EUKORAIL에 입사했다. 그 곳에서 고속철도 신호제어시스템의 주요부분인 연동장치(IXL)의 공급을 책임지는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에서 자신이 주축이 되어 설계를 하지 못하고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여 허 대표는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서울-대구) 건설이 완료되는 시점에 IMF 구제금융 여파도 지나가고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 호남고속철도 사업 등 철도신호사업이 확장되며 열차제어시스템 기술을 가진 국내 공급사가 필요했다. 허 대표는 2001년 이런 시장 환경에 따라 고속철도 신호제어 분야의 신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주)테크빌을 설립했다. 창업 후 가장 큰 문제는 시장에 진입하는 일이었다. 설계 기술을 갖춘 기술자가 대표가 되었지만 기존 철도신호업체들이 있고, 안전성 문제 때문에 신규 업체가 사업에 참여하는 길이 제한적이었다. 허 대표는 자신이 오랫동안 근무했던 LS산전에 협력회사로 등록해 경부고속철도 연동장치 현장조작반(LCP) 소프트웨어 개발 계약을 수주해 회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회사 설립 후 처음 5년간은 허 대표도 직접 기술 개발과 연구에 뛰어들었다. 대기업에서 10년 이상 근무하고, 철도신호제어 분야의 실무자로 경험이 많은 허 대표는 자신이 배운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부 전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업에서 일하며 특정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기술자들이 힘을 합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허 대표는 3단계에 걸쳐 기술자들의 능력이 합쳐질 수 있는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검토-결재-확정’단계를 통해서 직원들이 업무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함으로써 기술인력 부족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한 직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고,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회사 안에 전산실을 갖췄다.

허 대표는 경쟁사와 구별되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채택했다. 첫 째로 수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조직과 별도로 미래를 위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회사 부설 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에서는 고속철도 선진 기술을 국산화하여 자체 제품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국토해양부에서 추진하는 국책 연구 과제를 수행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06년부터 고속철도 사업이 증가하면서 수주와 매출도 증가했다. 올해엔 호남고속철도 발주에 성공해 수주를 100억 이상 늘었다. 두 번째로 회로를 설계하고 납품하기 전에 수 개월간 철저하게 시뮬레이션을 한다.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철도에는 안전성 확보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주)테크빌은 신뢰성을 인정받아 프랑스에서 도입한 고속철도 역정보전송장치와 납품한 모든 장비들을 독자 개발해 교체 공급하는데 성공했다.

(주)테크빌은 전 직원 중 98%가 기술자로 구성되어 있다. 허 대표는 직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대학이나 대학원진학을 희망하면 학비를 100% 지원하고, 세계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영어 교육도 100% 지원한다. 중소기업으로 동일업종 대기업에 비해 직원 복지를 위한 회사의 지원이 아직은 미약하지만 공부를 해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에는 최선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엔지니어는 과학적인 사실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게 적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저를 비롯해 모든 직원이 업무를 통해서 기술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허 대표는 (주)테크빌이 밖으로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안으로는 직원들과 함께 능력을 키우고 상호 신뢰를 다지며 신바람 나는 삶의 터전이 되는 회사가 되길 바란다. ‘Working Together’ 인류가 함께 기술문명의 시대를 즐겁게 살아가는 미래를 생각한다. 회사명인 테크빌에는 기술(technology)과 마을(ville)을 합쳐 기술자들이 하나 둘 모여 마을을 만들고, 꿈을 키우며 성장해 ‘기술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허 대표의 소망이 담겨있다. 현재 가장 큰 장벽은 중소기업으로서 협력사와 이익 공유가 가능한 상생 관계를 구축하고, 기술력을 인정받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다. ’02년 방콕 철도건설에 신호제어시스템을 납품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브라질 등 해외 고속철도 시장에도 (주)테크빌의 기술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회사의 비전은 2015년까지 해외시장 매출이 총매출이 50%가 되도록 지속 가능한 철도신호업체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고속철도 선진국은 프랑스ㆍ독일ㆍ일본입니다. 저희는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제품을 벤치마킹해서 저희가 가진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기술로 대체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응용력을 발휘해 산업 환경에 맞게 적용해 차별화 하죠. 장기적으로는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허 대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면 학벌이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시대가 변해가니 제 인생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 트렌드에 맞춰 미래 비전을 가지고 기술자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 바란다. 행복한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고 강조했다.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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