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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습잖아, 잡초같은 10대 인생이라니…청소년 연극 ‘빨간 버스’
[헤럴드 경제=문영규 기자]진지한 17세 여고 2학년 세진. 불량 청소년도,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아닌 평범한 모범생 소녀다.

헌데 사실 그는 미혼모다. 사랑인가, 실수인가, 아이의 분유와 기저귀 값을 고민해야 하는 삶의 무게 때문에 일찍 철이들어버린 평범하지 않은 소녀.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사는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의 아버지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세진은 보통의 소녀들처럼 아이돌에 열광하거나 친구들과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다거나, 혹은 입시를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저 잡초처럼 숨겨놓은 아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갈 뿐. 그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짧았던 삶을 씩씩하게 살아간다. 여고 2학년인데도 마치 40년을 넘게 살아온 사람처럼.

국립극단이 창작극 ‘빨간 버스’를 22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 소극장 판 무대에 올린다.



청소년극이지만 어른들에게도 전하는 이야기같다. 단순히 미혼모의 삶 뿐만 아니라 “모든 청소년은 발각되지는 않았지만, 자기 혼자만의 아이가 있지 않을까”라는 박근형 연출의 생각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른들에게도 그들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유아성을 보게 한다.

세진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어른들의 폭력, 그가 견뎌내야 했던 시선과 고통은 거친 세상을 홀로 살아가야 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나이 어린 여고생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어른들의 삶은 건강하지 못하다. 아이들도 이미 오래전에 어른의 세상을 눈치 챘다. 너무 많이 배워 이젠 배울 것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도 병들었다.”

연출가 박근형은 청소년을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세진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금기시된 것들을 도발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연극은 미니멀한 무대에서 진행되지만 거침없이 뱉어내는 여고생 세진의 대사는 관객에게 그의 처절한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강지은, 곽성은, 이은희 등 15년차 이상의 배우들과 세진 역의 신사랑 등 신진 배우들이 참여, 어른들에겐 과거의 고교시절과 지금의 삶을, 청소년들에겐 나와 친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소년이 그랬다’, ‘레슬링 시즌’에 이어 세 번째 청소년극을 준비한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연출가 박근형과 작업하며 실제 10대 미혼모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설문지를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이미지, 이기적인 부모님,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에 대한 실망감과 배반감, 동네 아주머니들의 시선 등을 세세하게 받아들이고자 했다. 청소년들로 구성된 빨간버스 승객단과 청소년 예술교육팀도 함께 운영됐다.

음악은 작품에 절박함을 더한다. ‘가슴이 먹먹한 건 조금씩 익숙해져요.’라며 ‘사는 건 이런가요.’라고 되묻는 노란 고등학교 합창단의 노래는 세진이 어른들에게, 세상에 던지는 거침없는 냉소다.

ygmoon@heraldcorp.com

[자료제공=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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