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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을수록 더 야하네
십센치, 2집앨범 ‘2.0’ 들고 팬들곁으로…
순진해 보이는 제목·가사엔
온갖 성적 은유들이 가득

젬베 뺐지만 더 깊어진 사운드
기존 인디와는 또다른 매력




데뷔 앨범으로 스타덤에 오른 뮤지션에게 있어 두 번째 앨범은 예고된 지옥이다. 흥행영화의 속편이 완성도와 관계없이 난도질당하듯 ‘슈퍼 루키’의 다음 작품을 향한 입방아는 숙명이다. 데뷔 앨범과 비슷한 결과물을 내놓으면 식상하다는 혹평이, 색다른 결과물을 내놓으면 초심을 잃었다는 비난이 쏟아질테니 말이다.

십센치(10㎝)는 두 번째 앨범 ‘2.0’ 역시 데뷔앨범과 마찬가지로 인디레이블(미러볼뮤직)을 통해 발매했다. 그러나 국내 최고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에 그 좋다는 CF까지 꿰찬 이들에게 인디 딱지를 붙이는 일은 어색하다. 앨범 전반의 때깔 고운 사운드와 야릇한 재킷 사이에선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슈가팝에서 웰메이드팝으로의 변화가 부담스럽다.

그러나 데뷔 앨범의 그림자를 걷어내면 이번 앨범이 상당한 고민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첫 트랙 ‘그대와 나’의 소박함은 멜로디컬하고 공간감 넘치는 최근의 인디 포크와는 다른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이 같은 선언은 두 번째 트랙 ‘파인땡큐앤드유(Fine Thank You And You)’에서 극대화한다. 에이징(Ageing)된 마이크로 먼 곳에서 녹음된 듯한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를 연상시키는 피아노 인트로, 녹슨 픽업 위에서 울리는 듯한 기타줄의 떨림…. 단순한 복고를 넘어 질감까지 재현한 이 곡에선 십센치의 음악적 자의식이 느껴진다. “너는 30평에 사는구나/난 매일 라면만 먹어”와 같은 당혹스러운 ‘돌직구’ 가사는 복고 사운드와 맞물려 오래된 기억을 쓸어모으는 마력을 보여준다.

신파 ‘한강의 작별’에선 ‘뽕끼’보다는 심수봉의 트로트 같은 격(格)이 앞선다. “너의 마음을 은행에 맡겨 예금통장에 부을 수 있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너의 마음이 불어나고”와 같은 ‘마음’의 가사에선 70~80년대 포크의 문학적인 결이 느껴진다.

가장 십센치답지 않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이제. 여기서. 그만’은 어쩌면 앞으로 다시 듣기 힘들 십센치의 록넘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하게 들린다. 이제 자신들의 나이를 계란 한 판으로 헤아릴 수 없게 된 십센치가 나이의 무게만큼 음악 자체에 진지한 욕심을 냈음이 앨범 곳곳에서 묻어난다.

1집 앨범과 비교해 가사의 성적인 수위가 낮아졌다는 것도 오해다. 순진해 보이는 가사 속엔 사실 온갖 성적인 은유가 가득하다. 그래서 더욱 야하다. 보사노바풍의 ‘냄새나는 여자’가 주는 공감각과 댄서블한 일렉트로닉 ‘오늘밤에’의 노골적인 가사도 야하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야한 곡은 ‘너의 꽃’이다. 수록곡 중 가장 예쁜 사운드를 들려주는 곡이어서 지나치기 쉽지만, 제목부터 가사까지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면 ‘19금 딱지’는 ‘오늘밤에’가 아니라 ‘너의 꽃’에 붙여져야 마땅하다. 이 또한 십센치의 의도였다면 그 주도면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젬베 빠진 사운드에 ‘길거리 정서’도 빠진 것 같아 아쉬운 팬도 많겠지만, 다듬어진 사운드에 매력을 느끼는 새로운 팬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십센치가 겉만 댄디해졌지 속은 여전히 엉큼하다는 점이다. 그것도 더욱 치밀하게. 그리고 팬들이 십센치에 핑크플로이드 같은 실험적인 음악을 기대했던 게 아니지 않나? 들어서 즐거우면 그만인 것을. 이것도 십센치고, 저것도 십센치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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