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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세계의 부자들이 좋아하는 그림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만 모은 미술관이 있다면.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 100점만 추린다 해도 산술적으로 약 5조원은 있어야 가능한 이 미술관은 현실에선 좀 어려울 수 있지만 가상미술관을 꾸미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경매인이자 수집가인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가 이런 꿈을 실현했다. 경매가 최고를 기록한 작품 100점을 모아 소장의 이력과 어떤 사연을 지녔는지 일일이 해설을 붙여 한 권의 책으로 내놨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시공사)은 오랫동안 경매현장에서 그림의 이동을 꼼꼼히 살피며 추적해온 이만이 알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와 명작을 한꺼번에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작품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그림값과 소장자에 쏠리게 마련이다. 그림이 겪은 사연이 구구절절할수록 값은 뛴다.

‘현대인의 초상’으로 불리는 고흐의 우울한 ‘가셰박사의 초상’(8250만달러ㆍ한화 9329억원)은 1897년 반 고흐의 누이동생이 300프랑에 판 이래 여러 컬렉션을 거쳐 프랑크푸르트 시립미술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리는 영예를 누리다 1937년 ‘퇴폐미술’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몰수된다.


괴링이 회수한 이 그림은 지그프리트 카마르스키에게 팔렸고, 1990년 경매에 나와 일본인 사업가 료에이 사이토 손에 들어간다. 이후 이 그림은 15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타이틀을 보유했다.

‘가셰박사의 초상’의 타이틀을 뺏은 작품은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1억416만달러ㆍ한화 1177억원). 그림값은 이 작품으로 처음 1억달러의 문턱을 넘어서게 된다. 피카소가 우울한 청색시대에서 안정적인 장밋빛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그린 이 그림은 1950년 뉴욕 헤럴드트리뷴의 발행인이자 억만장자인 존 헤이 휘트니가 3만달러에 구입했다. 이후 2004년 미망인 벳시 휘트니가 남편의 재단을 위해 이 그림을 경매에 내놓으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됐다. 소장자는 현재 가려져 있다.

이후 ‘가장 비싼’ 타이틀은 2010년 2월 알베르트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Ⅰ’(1억432만달러ㆍ한화 1183억원)에게 넘어간다. 쓰러질 듯 부러질 듯 한없이 연약하지만 묵직한 발이 보여주듯 걸어냄으로써 위대해진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자코메티 절정의 작품이다. 똑같은 작품이 9점이나 되는 이 조각이 예상가를 4배나 뛰어넘자 러시아 신흥부호 두 사람의 싸움이 빚은 결과란 설이 유력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 청동상을 구입한 소장자는 부유한 은행가 에드먼드 새프러의 미망인이자 신중한 수집가로 이름난 릴리 새프러였다.

이 최고 기록은 석 달 만에 깨졌다. 다시 피카소였다. ‘누드, 녹색 잎사귀와 가슴’(1억660억달러ㆍ한화 1209억원)에게 타이틀이 돌아갔다. 이 그림은 40대 중반의 바람둥이 피카소가 16세 어린 소녀 마리테레즈 발터를 만난 가슴뛰는 뜨거움을 담아낸 그림으로, 건강한 아름다움으로 충만하다.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그림은 1951년 부동산 재벌이자 이름난 수집가인 시드니 브로디 부부가 전설적인 화상 폴 로젠버그에게 사 호화로운 집의 한 쪽 벽을 장식했다가 후손에 의해 시장에 나왔다.

마리테레즈가 얻은 최고의 영예는 2년 동안 유효했다. 2012년 5월 세계 부호는 뭉크의 ‘절규’(1억1990만달러ㆍ한화 1335억원)에 월계관을 씌웠다. 다만 이 책에는 저자가 지난해 책을 펴낸 터라 싣지 못했다. 현재 경매가 7위에 올라있는 마크 로스코의 ‘오렌지, 레드, 옐로우’(8695만달러ㆍ948억원)도 같은 이유로 빠졌다.

작품에 얽힌 기구한 사연, 경매 뒷얘기도 흥미롭다. 얀 반 덴 호크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다가 루벤스의 작품으로 입증되면서 ‘유아 대학살’은 가격이 치솟는다. 와토의 ‘놀라움’은 혁명의 시기인 19세기 초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160년 후 어느 시골 화실에서 우연히 발견된다. 노먼 록웰의 ‘집을 떠나며’는 소장자인 돈 트랙트가 이혼할 때 작품을 나누며 아내에게 복제품을 주었다 탄로 나고, 반 고흐의 ‘아이리스’는 1987년 5390만달러(한화 609억원)에 팔렸는데 경매회사가 구매자에게 낙찰가의 절반을 비밀리에 빌려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책에 실린 100여점의 작품은 경매가 최고가 1위부터 100위까지의 작품과 정확히 일치하진 않는다. 저자가 독자의 다양한 명화감상을 위해 한 작가당 최대 작품 수를 두어 점에 한정했기 때문이다. 100위 안에는 피카소의 작품이 17점, 베이컨의 작품이 11점, 클림트의 작품이 7점이나 올라있다.

/meelee@he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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