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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은 내게 영원한 욕망이자 매너리즘 탈출구”
연극‘ 멸-滅’서 신라말 경순왕 김부役 혼신의 연기…정보석 인터뷰
연출공부 했지만 ‘배우’ 욕심 커
연극 안한 시간이 최악의 슬럼프

인간의 욕망·본성 어느시대나 같아
지나친 욕심은 언제나 화 불러
연기도 튀기 보단 작품에 녹아들어야


“관객들과의 즉각적인 대면이 있기 때문에 게을러서는 그 무대를 견뎌내지 못하잖아요. 지금도 두려움이 커요.”

관객과 만나는 순간은 배우에게 설렘과 긴장의 순간이다. 연극 무대는 배우 정보석에게도 스스로를 다잡게 만드는 공간이다.

30년 가까이 연기를 했지만 아직도 가슴 속 떨림을 간직하고 있는 정보석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제가 연극을 한동안 안 했을 땐 배우로서 굉장한 슬럼프 기간이었고 제일 반성하는 시간이었어요.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때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댔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배우도 아니고 뭣도 아니었죠.”

90년대 초부터 ‘엘리펀트 맨’, ‘초신의 달’, ‘안토니오 클레오파트라’ 등의 작품에 출연했던 정보석은 그동안의 매너리즘을 이겨내고자 2008년 연극 ‘클로저’를 시작으로 다시 연극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매년 한 편씩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욕망덩어리’ 경순왕 김부처럼 원래 대학에서 연출을 공부한 그는 처음부터 배우에 대한 욕심이 컸다.

“배우를 하고 싶었는데 연기교육을 받지 못해 연출을 전공했어요. 맘속으로 진짜 배우를 하고 싶었죠.”
 
30년 가까이 연기를 했지만 아직도 무대에 오를 때마다 긴장되고 떨린다는 정보석이 국립극단의 연극‘ 멸(滅)’을
통해 신라 말 경순왕 김부 역할로 무대에 선다. 그에게 연기는 욕망의 대상이지만, 자신을 도드라지게 하기보다는 작품 속에 녹아들어가고자 한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졸업작품으로 이언호 작가의 ‘소금장수’에서 주인공을 맡고 작품을 망쳤다며 선배들과 교수들로부터 욕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배우에 대한 욕망은 누를 수가 없을 만큼 더 커졌고 지금은 영화, 드라마, 연극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가 됐다.

그런 연기에 대한 욕망 덕분에 올해도 국립극단의 연극 ‘멸(滅)’을 통해 신라 말 경순왕 김부 역할로 무대에 선다. ‘멸’은 신라의 멸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작품. ‘멸’의 핵심 키워드는 세상에 단 한 가지 영원한 것, 바로 ‘욕망’이다. 작품 속 김부는 경애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욕망 가득한 인물로 그려진다.

“김부의 성격을 다혈질이고 즉흥적인 인물로 잡고 가고 있어요. 우린 보통 사회 윤리나 도덕 같은 제도, 시스템 안에서 억제하고 사는데, 본능적으로 변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잖아요.”

신라를 고려에 합병하려는 낙랑공주의 욕망, 마의태자로 알려진 아들 김일의 왕위에 대한 야욕, 왕위를 지키려는 김부, 모든 등장인물이 욕망의 늪에 빠져 무서운 암투를 벌인다. 정보석은 극 중 김부는 치밀함만 가지곤 살 수 없었고 나약하지 않은, 광적으로 사나운 부분도 있었다고 해석한다. 그는 “마지막은 고통과 처절함”이라며 욕망은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고 덧붙였다.

사극이었다면 시대, 문화적 성격을 지켜줘야 하는 부분, 표현이 제약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의상과 소품을 통해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덕분에 연기는 날개를 단 듯 자유로워졌다.

작품이 현대적으로 바뀐 만큼 우연찮게 대선을 앞둔 요즘 현실과도 맞물려 관객들은 요즘 세태에 대한 풍자가 있을지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석은 “욕망이란 역사에 사람들이 올라탄 것”이라며 “인간이 지닌 본질적 욕망, 본성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같다”고 했다. 작품엔 한 인물이 아니라 욕망을 가진 모든 사람이 반영되고 신라뿐 아니라 고려, 조선 등 왕조와 정권이 바뀌는 역사 속에 개인의 욕망은 떼 놓을 수 없는 것이란 얘기다.

김부의 욕망은 아들들과 부인들의 야망 때문에 무너졌다. 극은 ‘지나친 욕망은 경계해야 할 것’이란 메시지도 함께 전한다. 배우에게 있어 연기는 욕망의 대상이며 정보석도 그렇다. 하지만 연출을 배웠던 경험은 절제에 도움이 된다. “자신이 도드라져 보이기보단 작품에 녹아들어가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이번 ‘멸’에서도 작품과 어울리는 법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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