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계문학전집 ‘창비’만의 색깔은…
국내 초역 ‘라데츠키 행진곡’등 1차분 10종 11권 펴내…일본 근대 문학 한획 그은 ‘게 가공선’도 포함 주목
‘젊은 베르터의 고뇌’(괴테), ‘미국의 아들’(리처드 라이트), ‘돈 끼호떼’(세르반떼스), ‘라데츠키 행진곡’(요제프 로트),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딩링), ‘이반 일리치의 죽음’(똘스또이), ‘게 가공선’(코바야시 타끼지).

창비가 세계문학전집 1차분 10종 11권을 내놨다. 이 중 ‘라데츠키 행진곡’과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는 국내 초역이다.

창비 시리즈는 현재 90권 정도를 준비 중으로 30%가 초역이다. 여기에는 시마자끼 토오손의 ‘신생’, 카메룬 작가 페르디낭 오요노의 ‘어느 늙은 흑인과 메달’, 우루과이 작가 마리오 베네데띠의 ‘휴전’, 아르헨티나 작가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아르헨띠나인들과 함께한 블랙 노벨’ 등이 포함돼 있다.

창비셀렉션은 창비만의 독특한 컬러가 있다. 70년대 말부터 확장시켜온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담론을 이어 그동안 세계문학에서 주목하지 않은 아시아권,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권의 작품들이 다수 들어있다. 또 소설을 넘어 대표 시선, 장르문학도 포함시켰다. 

세계문학전집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민음사, 을유문화사, 문학동네에 이어 창비가 가세하면서 독자들로선 골라 읽을 게 많아졌다. 세계문학전집은 불황에 고전 열풍과 기본 다지기, 대입 논술 등의 영향으로 꾸준히 시장이 성장하면서 출판사의 든든한 보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1차로 출간된 창비의 세계문학전집 10종.

시리즈의 첫 책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로 우리에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친숙한 소설이다. 임홍배 서울대 독문과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이 책은 최초의 세계문학이라는 점이 기준이 됐다. 이전의 작품들이 국내용으로 소수 지식인에 의해 수용된 것과 달리 괴테의 이 작품은 독일을 넘어 프랑스, 영국까지, 식자층에서 일반독자까지 폭넓게 읽혔다.

임 교수는 ‘소재는 연애얘기지만 신분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이성과 감성의 조화 등을 화두로 삼은 당대 진보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독백체로 구성, 젊음의 들끓는 내면의 목소리를 살려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초역된 1932년 작 ‘라데츠키 행진곡’은 1차 세계대전 후 합스부르크 왕조의 몰락을 그린 소설로 소멸할 수밖에 없는 제국의 냉엄한 역사성을 그린 리얼리즘의 승리로 평가된다. 작가 요제프 로트는 유대인 출신이지만 가톨릭 교인이고 혁명가이자 보수파로 불린다. 오스트리아인으로 히틀러 집권 후엔 프랑스로 망명했다.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은 흑인문학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 남부 미시시피 출신인 라이트는 ‘미국의 꿈’을 안고 북부의 산업도시로 이주하지만 북부 역시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차별이 자행되는 일을 경험하곤 흑인의 시각으로 본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다룬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미국의 아들’은 흑인 빈민의 생활과 내면적 갈등을 그린 결정판 격이다.

이번에 나온 1차분 가운데 눈길을 끄는 소설은 코바야시 타끼지의 ‘게 가공선’이다. 먼 바다에서 넉 달간 게를 잡는 거대한 배가 무대다. 돼지우리와 같은 생활과 폭력이 난무하는 비참한 노동현장을 그려내 일본근대문학에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1929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이 다시금 주목을 받은 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롭게 읽히며 장시간 노동, 일용직 파견의 열악한 노동조건 등을 얘기할 때 ‘게 가공선이네’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이와 함께 모빠상. 도스또옙스키, 똘스또이 등 친숙한 작가들의 덜 주목받은 작품들도 전집에 올랐다. 가령 똘스또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대표작은 아니지만 작가의 정수를 담고 있다. 모파상의 ‘삐에르와 장’, 까뮈의 ‘전락’도 마찬가지다.

창비는 1년에 5~10종 정도 낼 예정으로 엄정한 기획, 정확하고 충실한 번역으로 창비만의 세계문학전집을 쌓아간다는 방침이다.

국내 세계문학전집시장은 1998년 민음사를 시작으로 2008년 펭귄클래식, 을유문화사, 2009년 문학동네에 이어 창비가 이번에 합세함으로써 콘텐츠와 자본을 갖춘 메이저 출판사가 모두 뛰어든 셈이다. 현재 세계문학전집 시장은 100억원대로 추산된다. 민음사가 약 300권을 출간, 연 100만권을 판매하고 있으며. 다음달 100번째 책을 내놓는 문학동네는 시장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문학과지성사와 을유문화사, 펭귄클래식코리아, 시공사도 각자 특색 있는 세계문학전집을 내고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