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28일 폐막…中 ‘홍등’ · 슬로바키아 ‘인간 혐오자’ 등 쉽게 접하기 힘든 주옥같은 작품 공연
8월 30일부터 개막한 국립극장 페스티벌이 폐막이 다가오면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다. 폐막작 ‘블랙워치(Black Watch)’를 마지막으로 28일 막을 내리는 ‘2012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은 우리가 쉽게 만나지 못하는 전 세계 국립단체의 공연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풍성한 세계문화축제다.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 힘든 나라의 연극, 발레, 현대무용 등이 모이는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은 국립중앙극장이 2007년부터 개최해 6년 동안 자리매김한 국제공연예술제다. ‘사람, 그리고 삶’을 주제로 올해도 5개국 15개 작품을 준비,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중국 국립경극원의 경극 ‘숴린낭’이 공연됐고, 그리스 신화를 다룬 터키 국립극장의 연극 ‘안티고네’도 무대에 올라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국내 단체도 가세,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와 ‘템페스트’, 미연&박재천 듀오의 국악공연 등으로 페스티벌을 꾸몄다. 남은 작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 중 해외초청작인 홍콩 현대무용단의 ‘K 이야기’, 중국 국가발레단의 ‘홍등’, 슬로바키아 마틴시립극장의 ‘인간 혐오자’,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의 ‘블랙워치’ 등은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지만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장이머우의 웅장한 스케일을 발레로…중국 국가발레단 ‘홍등’=‘붉은 수수밭’ ‘연인’ ‘황후화’ 등을 제작한 중국의 대표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가 발레작품 ‘홍등’을 통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1991년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발레 작품으로 장이머우가 최초로 연출한 무용극이다.
한국에선 2008년 처음 공연했고, 초연 당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준비된 이 작품은 1930년대 봉건영주의 권위주의적 사랑과 그의 네 명의 아내가 겪는 안타까운 일생과 중국 봉건사회의 폐습을 그렸다. 줄거리는 영화를 따라가지만 스토리와 등장인물은 발레작품에 어울리도록 연출했다.
슬로바키아 마틴시립극단의 ‘인간 혐오자’. 몰리에르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
‘백조의 호수’의 ‘튀튀’로 대표되는 발레의상은 중국의 전통의상 ‘치파오’로, 클래식 음악의 선율은 중국식의 전통음악으로 변했다. 영화처럼 특수효과를 쓸 수 없는 발레 ‘홍등’은 특별한 무대장치를 사용하지 않지만 장이머우의 연출력으로 중국의 웅장함을 붉은색의 강렬한 색채를 통해 보여준다. 중국 국가발레단은 발레와 현대무용, 중국만의 아크로바틱한 몸짓을 결합해 고전적인 발레와는 다른 느낌의 발레를 선보인다. 발레의 기교보다는 극적 요소를 더 강조한 작품으로 중국 전통무용과 경극적인 요소, 그림자극 등 중국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다양한 소재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음악총감독을 했던 프랑스 출신의 중국 작곡가 천지강이 음악을 맡았고, 독일에 귀화해 도르트문트국립극장 발레단에서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하는 왕신펑이 안무를 담당했다. 중국 전통미가 잘 살아나는 의상은 몬테카를로발레단 의상디자이너 제롬 카플랑이 디자인해 중국 발레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홍등’은 18일부터 1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슬로바키아 마틴시립극장이 만든 몰리에르의 희극 ‘인간 혐오자’=프랑스 고전 희곡의 거장 몰리에르의 작품을 슬로바키아의 마틴시립극장과 연출가 로만 폴락이 제작했다. 1999년부터 몰리에르의 희곡을 시리즈로 기획해온 폴락과 마틴시립극장은 시리즈 최신작인 ‘인간 혐오자’를 통해 2009~2010년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연극으로 평가받았다. 슬로바키아 최고 연극상인 ‘도스키어워즈’에서 최우수연출ㆍ최우수장면ㆍ최우수의상 부문 상을 수상했고, 우리나라와는 2010년 연극 ‘탱고’를 통해 인연을 맺어 올해도 ‘인간 혐오자’로 다시 찾아왔다.
‘인간 혐오자’는 몰리에르의 5대 걸작 중 하나. 주인공 알세스트가 클리멘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연적과 투쟁하고 배신과 거짓, 탐욕을 경험하며 고뇌하고 좌절한다는 내용이다. 인간 혐오는 작품 속 위선과 허위의 세계에서 나온다. 폴락은 등장인물의 희극적인 연출보다 진지함을 더 담고 현대사회의 도덕성을 꼬집기 위해 고민했다. 기존의 작품과 다른 점이라면 작품의 현대화를 위해 고전음악을 전자음악이나 탱고음악으로 채웠다. 의상 역시 근대 유럽의 모습을 담기보다는 현재의 우리 인간상을 보여주기 위해 현대적 의상으로 재구성했다. 무대는 옆면과 뒷면, 심지어 조명이 있는 윗면까지 막아 정리했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 슬로바키아 마틴시립극장의 ‘인간 혐오자’는 18일부터 2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영국군 최강의 전투부대 ‘블랙워치’, 전쟁을 만난 젊은이의 삶=스코틀랜드 젊은이도 한국의 젊은이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연극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블랙워치(Black Watch)’는 원래 영국 최강의 육군 보병연대를 지칭하는 단어다. 1725년 창단돼 워털루 전투, 1ㆍ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을 겪은 경험 많은 부대다. 부대원 대부분은 스코틀랜드 산악지대의 전사 하이랜더의 피를 물려받은 이들로 구성됐다.
뛰어난 병사들이지만 그들 개인은 꿈을 잃은 스코틀랜드의 젊은이들. 이들은 군에 입대해 전쟁에 뛰어들었으나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덧없음을 경험하고 이런 경험을 통해 삶에 대해 더욱 알게 되고 성장한다. 과거를 회상하며 그들이 말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해외파병과 분단국가의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한국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작가 그레고리 버크는 이라크전 참전 군인을 인터뷰하고 이 작품을 썼다. 뮤지컬 ‘원스’로 미국 토니상을 휩쓴 존 티파니가 연출을 담당했고, ‘블랙워치’ 역시 로렌스올리비에상 최우수연출, 최우수안무, 최우수연극, 최우수음향디자인상을 수상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지만 소극장 공연 연출을 위해 객석을 무대 위로 올렸다. 무대의 3분의 2를 객석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무대에서 공연하는 형태로, 관객과 배우가 같은 눈높이에서 연극을 관람할 수 있다.
배우의 호흡을 눈앞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작품 ‘블랙워치’는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제공=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