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적 감수성 물씬…미술팬 사로잡는 지석철 · 정보영 개인전
지석철‘ 부재’시리즈백사장에 나뒹구는 의자들…
인간의 부재에 대한 끝없는 연민
정보영‘ 빛, 시간의 경계’
칠흑같은 밤, 문틈으로 보이는 빛
공간의 극적 대비통해 시간 탐구
가을이 깊어가며 각종 미술전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회화의 매력을 보여주는 두 건의 개인전이 동시에 개막된다. 지석철의 연극적 회화와 정보영의 영화적 회화를 선보이는 작품전이 그것. 홍익대 미대 선후배 사이인 두 작가는 남다른 내러티브를 갖춘 회화로 미술팬을 매료시키고 있다.
▶빈 의자 통해 인간 존재 성찰한 지석철=지석철(59ㆍ홍익대 교수)은 ‘의자 화가’다. 그는 30년 넘게 의자를 그려왔다. 그것도 언제나 빈 의자를. 그에게 있어 의자는 인간 존재를 은유한다. 인간은 부재(不在)하지만 지석철의 빈 의자는 역설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상징한다.
10~25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지석철은 ‘부재’ 시리즈 20여점을 발표한다.
신작들은 지금까지의 의자 그림보다 더욱 비현실적이고 생경하다. 또 다양한 내러티브가 담겨 있어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하다. 하늘로 곧게 뻗은 나무 기둥 하단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고, 꼭대기엔 빈 의자가 거꾸로 얹혀져 있다. 저 튼실한 기둥처럼 세상을 호령했던 한 인간은 이제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까? 존재의 현존과 소멸의 끝자락만 살짝 드러낸 채 그림은 말이 없다.
작품은 지석철의 유화 ‘부재의 사연’(83×62㎝). 데미안 허스트의 그로테스크한 여인흉상을 패러디한 다음, 빈 의자를 대비시켜 인간의 부재를 질문한 그림이다. [사진제공=노화랑] |
크고 작은 조약돌이 늘어선 백사장에도, 묵직한 앤티크 카메라 앞에도 손톱처럼 작은 의자가 나뒹굴고 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 저 너머, 즉 피안의 세계에 대한 정서 혹은 그리움을 표현한 그의 그림은 대단히 모호하지만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지석철은 우리 화단에서 극사실적인 대상 묘사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다. 그러나 그는 “눈과 손이 옮기는 정치(精緻)한 묘사력은 그저 시작일 뿐이다. 대상과 이미지를 응시하는 사적 취향이 어떻게 각색되고 연출되는지가 중요하다. 이질적인 것들의 돌연한 공존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고 싶다”고 했다. 모노톤의 ‘비일상적 상상’을 통해 지석철은 인간의 심리적 상흔을 말없이 드러내고 있다. (02)732-3558
▶공간을 통해 시간을 탐구한 정보영=정보영(39)은 공간과 빛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가다. 그는 어두운 공간을 통해 시간성을 천착한 그림으로 국내외에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선 그의 차분하고 이지적인 그림들이 추정가를 훌쩍 넘기며 낙찰되곤 한다. 그가 10~23일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빛, 시간의 경계’전을 연다.
정보영의 회화 ‘Blue Hour’(130×194㎝). 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공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탐구한 그림이다. [사진제공=이화익갤러리(오른쪽)] |
정보영의 이번 그림 또한 사방이 칠흑같이 어둡다. 그가 그린 공간에는 작은 문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선명한 면 분할을 이룬다. 어둠 속 빛의 흔적은 더없이 강렬하다. 살랑거리는 촛불은 조금 전까지 인간이 그곳에 자리했음을 말해주고, 작은 문틈으론 불이라도 난 듯 다홍빛 불빛이 이글거린다. 다음 장면이 몹시 궁금해지는 지극히 영화적인 그림이다.
정보영이 그리는 공간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가 표현함으로써 낯선 공간이 된다. 밝음과 어둠의 드라마틱한 대비, 어둠을 가르며 시선을 사로잡는 빛줄기 때문이다. 비스듬히 놓인 사다리, 여린 빛을 뿜어내는 초,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벽지는 긴장감을 더해준다.
그의 작품은 원근법과 소실점 등 회화의 본령을 충실히 이행하며 아카데믹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동시에 회화적 감수성도 촉촉이 전해주고 있다. (02)730-7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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