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명 작가의 원작 소설 ‘뿌리깊은 나무’를 바탕으로 만든 연극 ‘뿌리깊은 나무’가 오는 31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된다.
‘뿌리깊은 나무’는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 살인 사건과 한글 창제의 비밀을 다룬 작품. 집현전 학사 4명의 죽음에 얽힌 비밀들을 감옥에 갇힌 겸사복 말단 강채윤과 광대 희광이가 과거를 되짚어가며 사건을 풀어가는 스릴러물이다.
강채윤은 왕의 침소에 난입한 죄로 감옥에 갇히고 희광이의 도움으로 과거를 재현해 내며 집현전 학사들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하나씩 풀어간다. 5행의 원리와 마방진을 이용해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가고, 마지막 희생자가 될 뻔한 성삼문을 살리며 한글 반포를 막으려는 무리들을 물리치고 왕의 뜻을 잇는다.
외세에 굴복해 민족정신을 잃어버리고 사대주의에 물든 사람들에게 한글은 눈엣가시와도 같다. 세종은 우리말을 글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을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창제하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널리 백성들에게 알렸다.
극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지만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며 가졌던 위민(爲民)의 정신과 의미는 잘 살렸다.
지난해 TV드라마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을 극단 독립극장이 규모있는 연극으로 만들었다. 원래 ‘뿌리깊은 나무’는 2008년 연극으로 만들어져 드라마보다 일찍 극으로 각색됐다.
시리즈로 여러 편 이어지는 드라마와는 달리 1시간40분 동안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연극은 소설과 드라마에서 수일에 걸쳐 있었던 사건들을 하룻밤으로 압축시켰다. 드라마가 밀본 ‘고금통서’를 통해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세종대왕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연극은 중반부까지 채윤과 희광이의 재현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하고 세종은 후반부에서 한글의 의미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극 ‘뿌리깊은 나무’.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자료제공=한강아트컴퍼니] |
드라마가 재미를 위해 더 많은 각색작업을 거쳤다면 홍원기가 각색한 연극은 보다 더 원작에 충실했다.
극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음악이다. 북소리로 긴장감을 높이고 반복되는 멜로디와 가사로 한글의 위대함과 민중들, 세종대왕의 마음을 담았다. 마지막 코러스가 모두 함께 하는 음악은 후크송처럼 흥얼거리게 만들 만큼 멜로디가 쉽고 단순하다.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영상도 전통의 미를 잘 살렸으며 마방진을 연상케 하는 조명 역시 극의 의미를 전하기 위한 장치로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글날을 공휴일로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연극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 창제 당시 세종대왕이 가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대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새삼 다시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이기도 연출은 “퀄리티 높은 교양연극으로 만드려고 했다”며 “한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세종을 통해 지금의 리더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