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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디지털 시대에 대한 명상
[헤럴드경제=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이 글을 쓰는 방식은 한 가지, 읽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다. 원고지는 이제 추억 정도, 키보드로 글을 ‘생산’하는 게 일반적이다. 종이의 질감과 소리를 느끼면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종이신문에서 칼럼을 읽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홈페이지나 포털사이트에서 이 글을 ‘소비’할 것이다. 바야흐로 ‘쿠텐베르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0과 1이 만들어 놓은 디지털은 세상에 혁명을 불러 왔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꾼 것은 물론 은유로서 혁명이 아니라 실제로 혁명의 거대한 도구가 됐다. 지난해 세계적인 독재자들이 몰려 있는 북아프리카-중동 혁명의 시발은 튀니지의 과일 노점 청년의 죽음, 그리고 곧바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쇼설네트워크(SNS)를 통해 확산이었다. 42년 세계 최장기 독재자인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처참한 죽음으로 마무리된 ‘중동의 봄’의 시작이 ‘새 한마리(트위터)’ 였던 셈이다.

우리의 일상도 디지털이 가져다 준 편리함이 넘쳐난다. 언제 어디든 소통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만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각을 바꾸면 디지털에 포위돼 있는 상황이다. 많은 예가 필요없이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많은 이에게 ‘지옥’이 될 상황이다. 이메일이 없이 소통이 가능한 직장이 몇 곳이나 될까. 어쩌면 우리는 디지털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 일 수도 있다.

만가지 변화를 살펴봐야‘(萬變是監)’하지만 그에 앞서 마음을 오로지 한 곳에 모아야‘(惟心惟一)’한다. 디지털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벗어날 순 없지만 한번 쯤은 ‘디지털 단식(斷食)’도 필요하다. 몸이 무거울 때 단식을 통해 몸을 비워내 새로운 힘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 와세다대 비즈니스스쿨 교수인 엔도 이사오가 ‘디지털 단식’이란 책을 통해 디지털 단식을 일본 기업의 생산성과 연결시킨 점은 흥미롭다. 일본 기업은 현장, 현물, 현실 등 삼현주의(三現主義)를 중요시 해 왔다.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실을 파악한 다음에 생각하는 삼현주의가 일본 기업의 강점을 만들어낸 근간이란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업무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와 하는 것이 돼 버렸고, 직장에선 딸깍딸깍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울려 퍼지고, 활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대화나 움직임은 줄었다는 주장이다. 섭취량이 너무 많은 지금, 디지털단식을 통해 깊이 생각하고 타인과 양질의 아날로그 시간을 되찾자게 이사오 교수의 제안이다.

디지털 시대에 로빈손 크로소가 될 수도 없다. 굳이 디지털과 떨어진 외딴 섬에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문명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하지만 하루만이라도 디지털 단식을 통해 새롭게 세상을 보는 방식을 깨우치는 것은 어떨까.

마침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수고스럽고 불편할 수 있겠지만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속에 겸허한 모국어가 이 가을에 던지는 아날로그에 귀기울여 보는 것도 한번 쯤 해 볼 일이다. 물론 ‘내 손안의 또 다른 세상’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과 만나기 위해 스마트폰을 끌 수 있어야 ‘용기’가 있어야 진짜 단식이 될 것이다.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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