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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이해준의 ‘희망가족’> 내부는 거대한 숲 방불…믿기지 않는 ‘건축의 성자’ 숨결이…
<21> 천재 건축가 가우디와의 만남…스페인 바르셀로나
파밀리아 성당 건축물 아닌 예술작품
200년 더 공사…미래 모습 상상 그이상

고지대에 알록달록 장식된 구엘공원
동화의 나라에서 꿈속 거니는 듯


[바르셀로나(스페인)=이해준 문화부장]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은 문화재를 찾아가는 여행보다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주고 지적 호기심을 유발한다. 유럽을 장기간 여행하는 경우 문화재는 사실 ‘그게 그것’ 같지만 ‘사람’은 각각 독특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만나는 역사적 인물들은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를 배경으로 극적이고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간 경우가 많아, 알면 알수록 여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중국에서는 공자, 맹자를 비롯해 현장 스님과 마오쩌둥, 인도에서는 간디, 이탈리아에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성 프란체스코, 오스트리아에선 모차르트, 네덜란드에선 반 고흐 등 모두 열거하기도 힘들다. 모두 새로운 영역과 역사를 창조한 인물들로, 그 발자취를 찾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야간열차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한 것은 순전히 스페인의 보물이자 천재건축가인 가우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첫날 피카소 미술관에 이어 둘째날 안토니오 가우디를 만나러 나섰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 할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건축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필생의 역작이자 현대 건축사에 빛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비롯해 ‘구엘 공원’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많은 건축물이 바르셀로나에 있다. 이를 보기 위해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상식을 뛰어넘는 가우디의 독창적인 발상과 기상천외한 작품들은 건축학도인 첫째 아들이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가우디에 관한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 가우디의 작품들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이면서 나와 아내, 둘째 아들에게는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탐험하는 신나는 모험인 셈이었다.
 
가우디가 31세에 건축을 맡기 시작해 7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달린 필생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착공한 지 130년이 지난 현재까지 공사가 진행 중이며, 모두 완공되려면 200년이 더 걸려야 한다.

메트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자 아주 독특하고 기묘한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책에서 여러 차례 보았지만, 이게 진짜 성당인가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6개월 동안 여행하며 동서고금의 건축물들을 숱하게 봤지만, 이런 것은 처음이었다. 건축물이 아니라 기묘한 예술작품 같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 서자 묘한 흥분이 몰려왔다.

가우디는 1852년 바르셀로나 인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류머티즘을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초등학교도 남들보다 늦게 입학했다. 본격적인 건축수업을 위해 바르셀로나 건축학교에 입학해 독특한 건축물을 설계해 교수들을 놀라게 했다. 졸업할 당시 학장이 “우리는 학위 증서를 바보 또는 천재에게 주었다. 시간이 (그의 실체를) 알게 해줄 것이다”고 했다고 한다. 가우디의 응수도 압권이다. 가우디는 “그건 내가 건축가라는 얘기야”라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가우디는 졸업 후 철 세공업에 종사하기도 했으나, 당시 스페인의 경제적 성장과 함께 직물로 대성공을 거둔 바르셀로나의 실업가 구엘이 그의 천재성을 높게 평가, 구엘 공원, 구엘 궁전 등을 의뢰하면서 독창적인 건축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가우디 건축의 최고봉인 파밀리아 성당은 근대화 바람 속에 신앙심이 약화하자 이를 되살리려는 한 출판업자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첫 설계와 착공은 교구 건축가가 맡았지만, 1년 만에 사임하면서 가우디가 떠안게 됐다. 그의 나이 31세 때인 1883년이었다. 그는 성당의 설계를 바꾸고 자신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접목, 74세에 사망할 때까지 40여년간 여기에만 매달렸다.

성(聖) 가족에 봉헌하기 위해 십자가 모양으로 설계된 이 성당은 예수의 탄생~수난~영광을 형상화한 3개 파사드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규모가 워낙 커 가우디 생전엔 ‘탄생의 파사드’ 밖에 완공하지 못했다. 1926년 그의 사망 후 스페인 내전 등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1950년대에야 재개됐다. 지금까지 공사가 130년째 진행 중이며, 모두 완공되려면 200년이 더 걸려야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입이 딱 벌어졌다. 외부의 옥수수 모양을 한 첨탑이나 정면의 예수와 성 가족 및 성인들의 조각상도 기존의 기법을 뛰어넘는 것이었지만, 성당 안은 마치 엄청난 숲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둥의 상단부는 가지를 뻗은 나무 모양을 하고 있었고, 천장은 나무가 팔을 벌려 떠받치고 있는 듯했다.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내부를 환하게 비추었다. 밖에서 볼 때는 이게 성당일까 싶었지만, 안에 들어오자 거대한 구조물이 관람객을 압도하는 가운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성스러움과 숭고함이 전해져 왔다.

어떻게 이런 건축물과 조각들을 생각해냈을까. 혀를 내두르면서 첨탑으로 올라갔다. 첨탑에는 옥수수와 포도, 밀과 같은 농작물은 물론 꽃과 나무 등 자연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돌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함께 가우디의 2대 역작으로 꼽히는 구엘공원. 돌과 타일로 알록달록 장식한 계단과 기둥, 곡선으로 처리한 건축물들이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성당이 완공되면 100m 이상의 높이를 가진 모두 18개의 탑이 들어서게 된다고 한다. 3개의 파사드에 4개씩 들어설 12개의 탑은 예수의 12 사도를 상징하며, 다른 4개의 탑은 복음성자를, 다른 1개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중앙의 가장 높은 170m 첨탑은 예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지금도 화려하고 장엄하기가 말할 수 없는데, 모두 완공되면 어떨까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한편엔 가우디의 삶과 예술세계를 정리해 전시해놓고 있었다. 특히 가우디가 건축기법의 영감을 자연에서 얻은 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가우디는 “꽃병을 바라보고, 포도나 올리브 밭에 둘러싸여 지내고, 새들의 노래와 곤충들이 붕붕거리는 소리를 듣고, 산을 바라보면서, 가장 순수하고 기쁨에 넘치는 영원한 여왕인 자연의 이미지를 보았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그는 또 “자연은 항상 열려 있으며 사람들에게 그 속의 비밀을 탐구하도록 독려하는 가장 위대한 교과서”라고 예찬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자연이 그에겐 영감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천재 건축가의 눈은 달랐던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샅샅이 살펴본 다음, 다시 메트로를 타고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바르셀로나가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위치한 구엘공원에 들어서자 동화의 나라, 환상의 세계에 온 듯했다. 돌과 타일로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계단과 기둥, 직선을 배제하고 곡선으로 처리한 건축물들과 조형물들이 초현실적인 세계를 선사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희한한 공원 같았다.

책에서만 보던 가우디를 만난 것은 충격적이라 할 정도로 짜릿한 인상을 주었다. 가우디가 창조한 건축물은 경이 그 자체였고 하나의 불가사의였다. 이것을 건축물 또는 공원이라는 어휘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정확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축에 몰두하면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자신의 재능을 신을 위해 사용한다는 신념 아래 말년에는 성자처럼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로 일관했다. 기도하러 가는 도중 전차에 치어 사망했을 때는 행색이 워낙 초라해 거지로 착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삶을 불행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 몰입하고 몰두하는 삶은 부평초처럼 흔들리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일지도 모른다. 그걸 통해 새로운 가치를 남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그가 창조한 환상의 세계와 그의 작품만큼이나 기묘하고 극적이었던 그의 삶은 긴 여운을 남겼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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