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에서는 ‘킹 메이커’로 불리지만 사실 그는 ‘숨은 흥행 메이커’이기도 하다. 매 작품마다 오직 연기 하나로 승부를 거는 그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는 두텁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 받은 이번 영화에 만약 류승룡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 영화는 이만큼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이미지도 자신에게 고정되길 거부했다. 이는 최근 그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알 수 있다. ‘최종병기 활’(2011)의 청나라 장수 쥬신타와 ‘내아모’의 장성기, ‘광해’의 허균까지 공통점이 없는 캐릭터들로 늘 관객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최종병기 활’에서 저의 남성스러운 모습을 보고 열광했던 관객들이 다음 작품에서 또 쥬신타 같은 연기를 바라시지는 않을 거란 말이죠. ‘내아모’ 역시 정말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셨지만, 또 그와 비슷한 작품을 했으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때쯤에 허균 이라는 역할이 들어왔어요. 전작들 속 캐릭터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더군요.”
극중 가장 감정 변화가 심한 인물은 바로 하선과 허균이다. 허균은 왕의 부재를 메울 사람으로 천민 하선을 이용하지만, 점점 백성들이 원하는 ‘진짜 왕’이 돼가는 하선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는 “하선이 변하는 모습에 맞춰갔을 뿐”이라며 웃었다.
“사실 뭐 이병헌도 광대 노릇을 하는 천민이었을 때와 왕이 된 직후의 하선, 그리고 왕이 되어가는 하선 등 변화가 무쌍한 캐릭터를 연기했잖아요. 저는 하선이 자연스럽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리액션을 잘 해준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류승룡과 이병헌은 이번 영화에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두 사람의 깨알 같은 애드리브와 코믹한 앙상블을 재미는 극의 큰 관전 포인트다. 실제 동갑내기인 류승룡과 이병헌은 즉석에서 애드리브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내아모’ 때와는 달리 애드리브가 있었어요. 이병헌과는 90프로 정도 계속 호흡을 맞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실제로 이병헌 씨는 개구쟁이 같아요. 긍정적인 성격에 영리하고요. 참 성실한 것 같아요. 또 지구력도 보통이 아니죠. 저보다 회차도 많았는데, 힘들 법도 한데 감독님 옆에서 계속 상의하더라고요.”
특히 이번 작품은 류승룡을 울린 작품이라 의미가 더욱 크다.
“마흔 세 살짜리 동갑 배우 둘이서 너무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죠.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 장면이었어요. 촬영을 할 때는 전체적인 숲을 보지 못해서 실감이 나질 않았죠. 그런데 완성본을 실제로 보니 여운이 가시질 않았어요. 많이 울었어요.(웃음)”
그에게 허균은 큰 도전이자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 인물이었다. 그는 “캐릭터가 약간 밋밋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주는 강렬한 느낌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영화를 믿고 시작했고, 그 믿음은 흥행과 관객들의 사랑을 동시에 안겨줬다.
그는 대중들에게 받는 사랑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제 인기가 그렇게 많나요? 전혀 체감한 적이 없어요. TV광고 섭외가 들어왔을 때도 놀랐죠. 사실 잘 나가는 배우나 국가 대표 스포츠 선수들에게 CF 섭외가 많이 들어오잖아요. 알아보는 대중들이 많아졌는데, 심지어 저는 그 사람들도 왠지 회사에서 섭외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웃음)”
사실 이번 영화는 이병헌이 주축이 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승룡은 그의 연기를 받쳐 주는 조력자 역할을 든든히 한다. 원톱 주연이 욕심 난 적은 없었을까.
“유독 우리나라가 주인공과 서브로 딱 선을 긋는 것 같아요. 일등 만능주의, 금메달 만능주의가 있는 것 같아요. 주조연으로 서열을 매기잖아요. 저는 그런 ‘서열’로부터 정말 자유롭고 싶어요. 배우는 말 그대로 연기로 승부하잖아요. 연기만 좋으면 됐죠. 저는 포스터 속 이름이 이병헌 뒤에 있건 한효주 뒤에 있건 아무 상관없어요.”
그런 그가 조만간 영화 ‘12월 23일’(가제)을 통해 뜨거운 부성애 연기로 관객들을 찾을 예정이다. 누군가의 조력자가 아니라 본연 자신이 극을 이끌어가는 ‘아버지’로 등장한다. 특히 그가 선보일 지적 장애를 겪는 아버지 연기에 벌써부터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정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그저 예외 사항이 있다면 이 사람은 지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거죠. 그런 캐릭터라 표현하기가 더 조심스러웠어요. 다음에 ‘12월 23일’ 이야기를 더 상세히 나눠요. 지금은 ‘광해’ 홍보 중이라서...(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어김없이 ‘내아모’ 속 장성기처럼 손등에 입을 맞추며 능청을 떨었다. 선 굵은 연기력, 그리고 카리스마와 재치의 공존.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뤘기에 그의 40대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사진 송재원 기자 sunn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