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제주허씨’의 ‘허’는 렌터카 자동차번호 앞 글자 ‘허’를 지칭한다. 관광객들이 제주도를 방문해 ‘허’자 번호판을 달고 곳곳을 누비니 이들을 ‘제주허씨’라 부르는 것. 책은 그들을 위한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수박 겉핥기식의 제주도 답사기를 벗어나 진정한 제주를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제주도의 삼다도(三多島 :바람, 돌, 여자가 많다)와 삼무(三無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 외에 삼보(三輔 : 자연, 민속, 언어)를 수록해 제대로 된 제주도 답사기를 만들어 관광이 아닌 ‘제주학’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제주답사 일번지는 어디예요?’ 뜻밖에 질문에 ‘조천, 구좌!’라 답한 유홍준은 제주도 동북쪽부터 답사를 시작한다. 제주의 신당 본향단 앞에서 귀신 집을 구경하듯 하던 학생들은 본향당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달라진 눈빛을 보냈다.
“본향당이란 요즘말로 하면 주민센터예요. 제주 여인네들은 자기 삶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본향당에 와서 신고합니다. 아기를 낳았다, 돈을 벌었다, 농사를 망쳤다, 우리 남편 바람 난 것 같다. 제주 신의 중요한 특징은 신과 독대한다는 점입니다. 제주 신을 할망이라고 해요. (중략) 하소연을 함으로써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겁니다.” 37쪽
모진 자연과 사우며 살아가는 제주인들에게 할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향당을 달리 보는 학생들은 나뭇가지에 걸린 종이들의 사연을 들은 후 좀 더 깊이 있는 답사를 경험한다.
“이 흰 백지를 여기서는 소지라고 해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하얀 한지죠. 본향당에서 소원을 빌 때 이 소지를 가슴에 대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빌고서 저 나뭇가지에 걸어두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 모든 사연이 소지에 찍혀 할망이 다 읽어본다고 해요.” -41쪽
이어지는 학생들의 탄성.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걸렸을까. 나무에 걸려 나부끼는 소지들이 마치 나뭇잎 같았으리라 상상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끼워넣는 풍습처럼 흰 소지가 나부끼는 와흘 본향당은 제주인의 전통화 정체성을 웅변해주는 살아 있는 민속이라 말한다.
이처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은 제주 곳곳에 서려있는 이야기들을 잡아낸다. 제주의 명물 오름답사에서는 저자가 꼽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도 만나볼 수 있다. 답사 중에 만난 관광객 아주머니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구성지다.
책은 제주도가 탐라국일 때부터 역사를 되짚으며 전설과 함께 선사유적지를 돌아본다. 이어 고려시대 몽골에 끝까지 항거한 삼별초의 유적과 산방산 등을 이야기와 버무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 이르면 ‘나비박사 석주명’과 일본인 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찌를 소개한다. 이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서 ‘제주학’의 숨은 뜻을 찾을 수 있다. 의미 있는 제주여행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 할만하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