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귀성객이 무수히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경기도 용인시 기흥의 한국미술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특별한 전시회를 마련했다.

한국미술관은 설치미술가 심영철 교수(수원대학교 미술대학)를 초대해 ‘Matrix Garden

-영혼의 소리, 빛의 꽃으로 피어나는’전을 오는 10월 24일까지 전관(본관ㆍ신관)에서 개최한다.

이 전시는 근래 어떤 작가의 작품전보다 스펙터클하고, 다이내믹하다. 6m 높이의 장대한 금속설치물은 숭고한 빛의 교향악을 들려주며, 천장에 매달린 스테인리스 스틸 구슬은 잔잔한 바람에 부딪히며 독특한 금속성 사운드를 끝없이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홀로그램과 레이저, 플라즈마 기법을 활용해 인간의 의식을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를 우주의 파노라마처럼 드러낸 연작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미래의 전자정원을 그려본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하고 상상하게 되는, 그런 색다른 공간 설치작업들이 가득하다.
 

첨단 미디어 아트와 설치미술을 선보여 온 심영철의 신작 ‘지혜의 눈’. 9개의 눈이 뿜어내는 오묘한 빛이 끝없이 변주된다.

심영철은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구슬을 기본단위로 사용했다. 그에겐 이 금속 구슬이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다. 작은 구슬이지만 눈앞의 모든 풍경을 품고 있기에, 그는 이 오브제를 활용해 압도적인 조형물을 만들며 ‘매트릭스 가든’을 조성했다. ‘매트릭스’란 눈앞의 문을 열면 그 안쪽에 또 다른 문이 끝없이 이어지는 아득한 세계를 가리킨다. 종축, 횡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매트릭스 개념에 매료된 심영철은 삶과 죽음, 욕망과 절제, 사랑과 갈등이란 경계를 오가며 초월적 빛의 변주를 시도했다.

출품작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높이 6m의 미술관 메인 전시실을 꽉 채운 설치작업 ‘빛의 꽃’이다. 은색의 커다란 스테인리스 스틸 구슬을 초대형 포도송이처럼 집적시킨 이 작품은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이 압축된 듯 장대하다. 구슬들 사이에선 광섬유가 촉수처럼 뻗어나와 현란한 빛과 투병한 빛을 번갈아 쏘아댄다. 이는 곧 끝없이 이어졌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로 충만한 상태를 은유한다. 즉 ‘영혼의 씻김’을 표현한 것. 이 작품은 바로 옆 2층 전시실의 ‘비상’과 연결된다. 572개의 금속 구슬을 천장에 촘촘히 매단 작품은 힘차게 날갯짓하는 새를 연상시킨다. 관람객들은 이 미니멀한 작품 아래 설치된 거울바닥에 누워, 구슬들에 비친 스스로를 바라보며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바람이 불면 사운드와 향기도 전해진다. 시각ㆍ촉각ㆍ청각을 넘나드는 공(共)감각적 작업인 셈이다. 

높이 6m의 미술관을 꽉 채운 공간 설치작품 ‘빛의꽃’. 관람객이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금속 구슬을 만지며 소리까지 듣도록 한 관객참여형 작업이다.                                                          [사진제공=한국미술관]

심영철의 신작들은 그의 작업세계가 전혀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정원에서 작가는 오랜 미디어 아트 작업에서 축적된 역량을 인간, 생명, 우주같은 심오하고도 원대한 주제로 풀어냈다.

작가는 그간 일련의 Garden(가든) 시리즈를 발표해왔다. 1990년대 초 ‘일렉트로닉 가든’을 필두로, ‘모뉴멘탈 가든’(2002), ‘시크릿 가든’(2006)을 거쳐 ‘매트릭스 가든’에 도달한 것.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심영철의 이번 신작들은 무한히 증식, 변주되며 열린 구조를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연휴에도 관람가능하다. 월요일은 휴관. 031)283-6418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