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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칼럼>호모 루덴스와 야구 경기
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


프로 야구 페넌트 레이스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삼성, 롯데, SK, 그리고 두산이 가을 야구 초대 팀으로, 나머지는 내년을 기약하는 쪽으로 지형이 굳어지고 있다. 물론 돌변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순위 다툼 때문인지 요즈음 야구장에서 볼썽사나운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지난 12일엔 LG의 김기태 감독이 0-3으로 뒤지던 9회 말 신인 투수를 대타로 기용하여 게임을 포기했다. 상대인 SK 이만수 감독의 변칙적인 투수 기용에 화가 나서 이런 황당한 작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선수기용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관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이없는 처사임엔 틀림이 없다. 잦은 투수 교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엔 한 경기에 7, 8명의 투수를 동원하여 승수를 챙기던 명장(?)도 있었다.

아무튼 이번 김기태 감독의 고뇌에 찬 결정(?)은 스포츠 정신에도 위배되고 상식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이만수감독의 행동도 떳떳했다고 동의하기 힘들다. 승수에만 목매는 우리 야구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또 하나는 16일 KIA 선동열 감독의 퇴장 사건이다. 8회 말 타자가 친 볼이 파울이냐 아니냐를 놓고 격하게 심판에게 항의했고 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수들을 불러 들였다. 이 때문에 선동열 감독은 퇴장을 당했다. 경기는 속개되어 원만하게 매듭지어졌지만 한 동안 관중들은 멍하게 기다려야 만 했다. 불쾌했던 장면이다.

스포츠에서 이긴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다는 아니다. 스포츠는 승리를 겨냥한 과정의 아름다움, 승리를 향한 협동과 조화가 더 더욱 멋진 일이다. 요즈음 야구장을 찾는 관중들은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게임 내용을, 그 분위기를 즐기는 추세이다. 졌다고 물병 던지는 일이 거의 사라진 것이 이를 반증한다. 관전 수준은 향상되었는데 경기인의 자질은 그저 그런 것 같아 답답하다.

네덜란드의 문화사 학자인 요한 호이징어는 여가선용을 위한 음악, 미술, 무용, 스포츠 등을 즐기는 현상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로 개념화 했다. 호이징어는 유희라는 것이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신적인 재창조, 재충전을 통해 삶을 살찌우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희는 삶의 양식을 가꾸거나 만들어 가고 문화를 일구는 중요한 동인이고 요소로 분석하고 있다. 이 주역이 ’유희하는 인간‘이다.

야구는 여유와 여백이 많은 경기이다. 넓은 공간에 9명이 드문드문 서 있고 공수가 교대하는 쉼도 있다. 축구나 농구와 달리 게임이 계속 숨차게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단은 없다. 다음을 위한 준비만 있을 뿐이다. 느슨하게 보이지만 100분의 1초라는 빠른 시간에 승패가 갈리는 예민한 경기이다. 치열함만 있지 치졸함은 허용되지는 않는다.

그런 경기를 완성시키는 주역은 감독이나 선수들이다. 승부욕 때문에 야구의 본질이 훼손될 순 없다. 성숙한 야구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감독, 선수 그리고 관중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곧 펼쳐질 가을야구에서는 성숙한 ‘호모 루덴스’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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