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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슈퍼갑’(甲)…그들이 사는 방법…
[헤럴드경제= 민상식 기자]추석 명절이 되면 신나는 이들이 있다. 솔직히 명절 때만은 아니다. 평소에도 이들은 항상 불편함이 없다. 바로 ‘슈퍼갑’(甲)들이다. 일반적인 업무상 갑(甲)과 을(乙)의 관계가 사라질 수는 없다. 다만 갑 중에서도 슈퍼갑이 있고, 이 슈퍼갑은 갑 중에서도 진정한 갑으로 통한다.

각종 이권을 꽉 거머쥔 채 을이 머리를 숙이고 굽신굽신할 때 살짝 이권을 흘려준다. 을들은 “더러워서...”라고 말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한다.

국내 중형 제약사 영업사원인 A(38) 과장. A 과장는 지난 주 한 중형병원 병원장 B 씨로부터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B 원장은 A 과장과 전화통화에서 “우리 오늘 직원들이랑 회식하는데...”로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 20명 돼. 그런데 우리 한우가 먹고 싶은데 괜찮을까?”라는 말로 마무리를 졌다.

A 과장은 B 원장에게 “예 원장님 그렇게 하시죠.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A 과장은 다음날, B 원장과 병원직원들이 회식을 한 고깃집에 가서 쇠고기 40여인분과 소주, 맥주, 냉면, 된장찌게 등을 먹은 150여만원의 회식비를 대납해야 했다.

A 과장의 하소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중형 병원 C 원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친구들과 제주도에 가서 골프를 치는데, 꼭 A 과장에게 전화가 와 C 원장의 집에서 김포공항까지 픽업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1박2일 골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여지 없이 김포공항에서 자신의 집까지 다시 데려다 달라는 요구를 한다. 당연히 한 달에 한 번 A 과장은 자신의 주말을 C 원장에게 상납해야 한다.

한 보험사 영업부장 D(42) 씨 역시 슈퍼갑 때문에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D 부장은 한 대형 외식업체 체인점 70여곳의 종합보험을 도맡아 계약했다. 이 과정에서 외식업체 체인점 총무부장의 각종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총무부장 딸 아이의 노트북을 사주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총무부장 아들이 고등학교를 들어갔다고 갤럭시노트를 사달라고 징징댄다는 얘기를 전화를 통해 들었다.

D 부장은 다음날 갤럭신노트를 사들고 총무부장을 찾아가 전달해줬다. 여기에 이 체인점의 상품권을 현금화해주는 것도 도맡아 담당해주고 있다. 이렇게 현금화된 상품권은 이 체인점 총무부장의 주머니속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실이 한국도로공사 내부감사 문건을 입수해 공개한 자료에는 대리급 직원 두 명이 견인업체로부터 수백만원의 향응과 성접대를 접대 받거나 야간 상황실에서 견인업체 직원에게 통닭이나 족발 등 야식을 배달시키다 적발되기도 했다.

또 견인업체가 주로 차량 수리를 맡기는 차량 정비소에 직원 부인의 고장 난 자동차를 맡기고는 수리비를 내지 않기도 했다.

지난 24일 검찰에 적발된 한 TV홈쇼핑 전직 상품기획자(MD) 역시 슈퍼갑 행세를 했다. MD였던 E(32) 씨는 건강식품 업체 4곳과 사은품업체 3곳에서 모두 4억2000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당연히 E 씨는 업체들에게 황금시간대에 프로그램을 배정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박진 한국조세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은 “계약관계에서 쌍방간에 갑과 을이 형성돼 우위가 나뉘는 것은 우리나라에 일상화된 모습”이라면서 “하지만 갑이 소수인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슈퍼갑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소장은 또 “갑이 여럿이면 갑 사이에 경쟁이 촉발돼 슈퍼갑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을도 경쟁력을 갖춰야 이 같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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