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웅장하고 거대한 함원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대한 미로같은 함원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아버지와 딸의 삶을 이야기한다. 함원은 주잉홍이 나고 자란 곳이다. 아버지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었지만 사상범으로 감시의 대상이다. 아버지는 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유배하듯 생활한다. 그의 일상은 함원을 가꾸고, 고가의 사진기를 수집하여 함원의 모습을 찍고, 자동차를 사들이는 게 전부다.
어린 주잉홍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지만 성장하면서 함원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다. 집안은 점점 몰락하고 주잉홍은 가족을 떠나 유학을 간다. 유학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통해 함원을 만나고 그리워한다. 결국 아버지는 죽고 함원으로 돌아온다. 홀로 함원에서 살게 된 주잉홍은 부동산 개발업자인 린시겅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주잉홍에게 허물어진 함원을 복원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주잉홍은 분명 그를 사랑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소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잉홍에게 린시겅은 어쩌면 함원과 같은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버릴 수 없는 존재, 지키고 싶은 존재 말이다.
소설은 계절마다 색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는 함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황홀하면서도 몽환적인 풍경은 놀랍도록 아름답지만 서글프다. 아버지와 딸의 몰락을 모두 지켜본 공간이고, 타이완의 역사를 비유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함원은 일본 식민지였고 군사 독재를 받았던 아픈 시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린시겅이라는 부동산 업자의 역할도 그러하다. 타이완의 경제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하는지 그의 행동을 통해 알려주는 것이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소설이다. 매혹적인 슬픔을 담고 있다. 주잉홍과 린시겅의 사랑이 그러했고, 함원에서의 삶이 그러했다. 아버지와 주잉홍에게 함원은 같은 공간이었지만 의미는 달랐다. 함원은 곧 인생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편지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의 함원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복잡하면서도 신비로운 미로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일생 수십 년을 함원에서 살았지만, 아야코가 편지에서 말한 참억새꽃이 온통 하얗게 하늘을 뒤덮는 장면을 본 적이 없어. 어둠속에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생의 인과응보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날 아야코가 본 것은 결국 이 끝없는 인생도 일종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이거나, 설령 정말 참억새꽃이 눈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해도 결국에는 땅에 떨어질 것인데, 이는 일체의 모든 것이 발생한 적도 없고 온 적도 없고 간 적도 없다는 것, 이 대천세계는 한바탕 꿈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p.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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