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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경기장 내 ‘욱일승천기’ 출현의 깊은 우려감
‘생명의 행진(March of life)’에 관한 기사를 읽고 뭉클해졌다. 가해자인 나치의 후손들과 핍박받은 희생자의 가족들이 함께 어울려, 폴란드 전역의 강제수용소를 순례하는 장장 2253㎞의 행진을 무사히 끝마쳤다는 내용이었다. 한발 한발 행진을 이어가면서 그들은 참회와 용서를 주고받으며, 종국에는 서로의 가슴속에 ‘치유’라는 큰 선물을 담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한다. 무겁게 겹치는 생각이 있다. 일본인과 우리는 과연 이와 같은 만남이 언제나 가능할까?

독일인의 자기반성과 역사의식은 실질적이고 과감하며 군더더기가 없는 반면, 같은 전쟁도발국인 일본의 세계사적 인식은 한마디로 소아병적(小兒病的)이다.

국기(國旗)에 관한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다. 독일은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국기를 전면 폐기하고 예전 바이마르 공화국시절의 검정, 빨강, 노랑의 삼색기를 다시 채택해서 나치즘과의 진정한 결별을 행동으로 옮겼다. 또한 형법 제86조에 나치의 상징물에 관한 처벌규정이 명문화 되어 있어 철저하게 단속하고 있다.

일본은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다르게 지금껏 일장기를 사용하고 있고, 해상자위대의 군기로 욱일승천기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당시 동서냉전기의 바람이 거세게 불자 미 군정은 일본의 복구와 재건에 주력하다보니, 정작 향후에 발생될 군국주의의 망령을 예단하지 못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렸던 여자월드컵 한ㆍ일전 경기 중에 군국주위의 표상인 욱일승천기가 보란 듯이 관중석에서 휘날렸다. 더군다나 취재 중인 한국기자에게 ‘조센진’이라고 막말을 퍼붓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후 촬영한 사진을 강제로 삭제케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더 큰 문제는 노년층의 흘러간 자가당착으로 치부하기에는 청장년층의 참여율이 높았다는 점과 극우 정치인들이 획책하는 ‘감정적 국수주의’의 발로가 극단적인 폭력사태로 발전해 경기장내에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유없이 그 깃발 밑에 무참히 짓밟힌 아시아인의 희생을 기억한다면 결코 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실제 일본에서 프로골퍼로 활동 중인 안선주 선수가 얼마 전 극우단체로부터 위협을 받은 바 있다.

스포츠는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평화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국제경기관련단체가 나서 경기장 내 욱일승천기의 사용을 제재하는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올 초 리더십의 부재를 꼬집으며 ‘일본 군부의 독재를 허용한 것도 바로 국민이었다.’는 주니치신문(中日新聞)의 자조 섞인 지적처럼 일본인의 자정 능력이 시험대에 올라있는 형국이다.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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