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동미 기자]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전인 19세기 중반 강화도의 군사 방어 태세를 살필 수 있는 사료가 발견됐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11일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ABC) 사업의 일환으로 강원도 평창 지암정사 소장 도서를 조사하던 중 언해 필사본 ‘팔상록’(권4, 1책본) 이면에서 이 같은 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발견된 문서는 ‘강화부 부상각진보상각돈대상 각양군기잡물수목(江華府 府上各鎭堡上各墩臺上 各樣軍器雜物數目)’으로, 1854년(철종 5년) 2월13일 현재 강화부 각진보와 돈대(墩臺)의 군기 현황을 강화유수(江華留守)의 책임하에 정리한 것이다.
이 문서에는 강화부 전체의 군기 상황뿐 아니라 각 진보와 돈대, 4영(營) 등에 배치된 무기와 군수 물자 현황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 강화부 전체가 보유한 화약만 모두 6만 6400여 근에 달했다고 적혀 있다.
또, 당시 강화부 돈대의 무기체제는 17세기 말인 1696년(숙종 22년) 강화도의 현황을 정리한 지리지인 ‘강도지(江都志)’에 나타난 돈대의 표준적인 무기 배치 현황과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영구 국방대학원 교수는 “17세기 말 이후 150여 년 동안 강화부 돈대의 무기 체계는 궁시 10자루와 별장조총 3자루가 추가된 정도였다”며 “근본적인 전력 증가의 양상은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또, “현재 19세기 강화부의 방어 태세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다”며 “1850년대 이후 본격적인 해안 방어론이 등장하기 직전 강화부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군사능력과 수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 라고 평가했다.
한편, 불교학술원은 항일과 친일의 논란에 서 있는 고(故) 지암스님의 소장본을 조사하던 중 이 자료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pd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