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 불교관점서 재해석
사찰음식 연구가이자 미술가인 정산(靜山) 김연식(66)이 개인전을 연다. 서울 관훈동의 인사아트센터에서 12일 개막되는 작품전에는 날카로운 면도날을 활용한 설치작품및 부조작업을 선보인다.
전시 타이틀은 ‘구스타프 말러의 몽유도원도’. 세계적인 작곡가 말러의 교항곡을,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빗대 풀어낸 작품들이다. 김연식은 장중하고 심오한 말러의 교항곡을 동양의 불교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해 냈다.
전남 여수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열다섯 살에 출가했다. “세 분의 어머니가 속앓이를 하시는 걸 보고 집을 뛰쳐나왔다”는 그는 제주도를 거쳐 부산 범어사에 입산해 행자시절 별좌(음식 만드는 곳의 책임자), 원주(절의 살림을 총괄하는 직책)를 거쳐 전국 사찰에서 전해져 오는 독특한 사찰음식을 채록하는 일을 맡았다.
“사찰음식을 연구하던 중 사찰 주변의 자연풍광에 빠져들었고, 창작을 시작했다”는 그는 2007년 첫 개인전 ‘관조+명상’전을 필두로 다섯 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특히 그는 색색의 매니큐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면도날 7만개를 세우고 그림을 그려‘ 말러의 몽유도원도’를 만든 김연식의 작품. |
6회째를 맞는 개인전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매니큐어 그림이 아니라 예리한 면도날로 만든 30여점의 작품을 출품한다. 가로 11m의 화폭에 면도날을 촘촘히 세우고, 그림을 그려넣은 대작 등 3점의 작품에는 무려 7만개의 면도날이 투입됐다. 면도날은 (주)도루코에서 협찬받았다.
작가는 “장엄하다 못해 장송곡처럼 슬픈 말러의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9번 교향곡은 구도자의 걸음걸이를 연상케 한다”며 “마지막 악장에선 숨도 크게 쉴 수 없을 정도의 충만감이 몰려오다가 세상만사를 송두리째 잊게 하는 평온함이 느껴지니 이게 바로 열반의 경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면도날을 작업의 소재로 사용한 것은 “칼은 양면성이 있다. 잘못 쓰면 인간을 해치지만 의사나 조리사가 쓰면 사람을 살리거나 이롭게 한다. 칼에 대해 무조건 터부시하는 일반의 인식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3㎝ 간격으로 면도날을 매단 지름 1.5m의 구체 형상의 작품도 공개한다.
맨손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예리한 칼날에 베어 그의 손은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면도날을 활용한 작업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과정이자, 창작을 위한 과정이기에 아픔도 환영한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보다는 프랑스 등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세계 150개국 작가가 출품했던 프랑스 샤랑통 시의 살롱전에서는 한 명만 뽑는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말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개인전이 잡혀 있다. 전시는 24일까지. 02)736-1020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