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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가을 안방극장 물들이는 드라마 속 오컬트 감성…사이버 세대에 통했다
[헤럴드경제 =한지숙 기자]한동안 안방극장에서 사극 인기를 견인해온 퓨전 사극의 판타지성(性)이 한층 ‘레벨업’되고 있다.

정통 사극과 비교해 퓨전 사극은 역사 속 인물과 일화를 빌려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르로 분류한다. ‘뿌리깊은 나무’ ‘추노’ ‘공주의 남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판타지성을 더욱 가미한 퓨전 판타지 사극 ‘해를 품은 달’이 국민적인 인기를 끌고, ‘옥탑방왕세자’ ‘닥터진’ 등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타임슬립’ 사극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올가을엔 ‘오컬트(occult)’ 감성이 충만한 사극이 안방극장을 물들이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MBC 수목극 ‘아랑사또전’과 SBS 월화극 ‘신의’, KBS가 오는 11월 방영 예정인 ‘전우치’가 그 주인공이다. 세 드라마에서 모두 주술과 영혼의 존재 등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현상과 지식을 뜻하는 오컬트 감성이 극 전체를 휘감고 있다.


경상남도 밀양에 전해져 내려오는 ‘아랑전설’을 모티브로 한 ‘아랑사또전’은 천상계와 지상계, 저승계를 아우르며 400년 전 요괴와 맞서 싸우는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로 탈바꿈했다.

본래 ‘아랑전설’은 경상도 밀양부사의 딸인 아랑이 음흉한 유모와 통인(지방 관아의 심부름꾼)의 흉계에 의해 살해당하고, 억울한 원귀가 되어 신임 부사가 부임할 때마다 해원(解冤)을 청하는 내용이다. 신임 부사들이 하룻밤도 지내지 못하고 죽어나가자, 이상사라는 간 큰 사람이 밀양부사를 자원해 아랑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주검을 찾아내 장사 지내주고 범인을 잡아들인 다음부터 원혼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결말이다.

‘아랑사또전’은 초반부 이 전래동화를 따라가는 듯했다. 아랑(신민아 분)이 자기 죽음의 이유를 파헤치고, 혼령을 보는 능력을 지닌 은오(이준기 분)는 행방불명된 어머니를 찾기 위해 아랑을 도와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그런데 극 중반부 들어 은오의 어머니 홍련(강문영 분)이 400년 된 요괴로 밝혀지면서 전혀 다른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판이 커졌다. 사람으로 환생한 아랑이 알고 보니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이며, 홍련은 영생불사의 몸을 얻기 위해 아랑을 노리고, 이 모든 게 옥황상제(유승호 분)와 염라대왕(박준규 분)이 홍련을 붙잡기 위해 쓴 계책이었다는 설정이 이어져 앞으로 극 전개에 흥미를 더하고 있다.


간혹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이 드라마는 고수레(제사를 지낼 때 귀신에게 떼주는 음식), 우물 귀신, 장독 귀신, 툇마루 귀신 등 현대 도시사회에선 잊힌 풍습과 잡귀의 존재를 생생하게 불러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SBS ‘신의’는 고려 공민왕 시대를 배경으로, 현대 성형외과 전문의 은수(김희선 분)가 타임슬립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이 주된 이야기지만, 곳곳에 무협소설에서 나올 법한 장면이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인 고려 무사 최영(이민호 분)을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들이 상당한 무공을 쓰는 초능력자들이다. 최영은 뇌파를 조정하는 뇌공을, 천음자(성훈 분)는 대금으로 음파 무공을 쓰며, 화수인(신은정 분)은 오른손에 열을 집중시켜 화공(火攻)에 능하다. 장빈(이필립 분)은 의술을 펼칠 때 점혈법과 내공운기법을 쓴다.

오는 11월 방송 예정인 드라마 ‘전우치’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모았던 고전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겪으면서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전우치는 힘없는 민중 편에 서서 각종 신묘한 도술을 부리며 탐관오리에 맞서는 조선판 ‘슈퍼히어로’다. ‘바람의 나라’를 연출한 강일수 감독과 ‘포도밭 그 사나이’의 조명주 작가가 의기투합한다. 전우치 역에는 옥태연이, 상대 여자 배우로 유이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과학적인 근거나 개연성이 다소 부족한 주술이나 무술 등이 그럴듯하게 사실인 양 끼어든 것은 ‘해를 품은 달’에서부터였다. 무녀 녹영(전미선 분)이 어린 연우(김유정 분)를 살리기 위해 주술을 거는 부분에서 검은 연기가 일어나는 등 초자연적인 현상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재현됐다.

당시의 양념이 요즘 판타지 사극에선 ‘메인 코스’로 바뀌었다. 한때 미풍양속과 사회질서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금기시되고 사회 음지에 속해 있던 무당과 무녀, 주문과 주술이 판타지 드라마를 만나 현대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부여받은 셈이다.

비논리와 허무맹랑함에도 시청자의 거부감은 낮은 편이다. 능력치를 배가해가면서 미션을 완수하는 각종 판타지 무협 장르 온라인 게임에 친숙한 요즘 젊은 층의 구미에는 특히 맞는다.

한편으로 ‘추적자’ ‘유령’ 등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의 인기에 대한 반작용이란 해석도 나온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현실에선 성폭력 범죄가 범람하고 대선을 앞두고 어지러운 시기에 현실을 외면해버리고 싶은 심리가 판타지 강한 드라마 시청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종합편성채널 등장 이후 케이블TV를 포함해 드라마 편수가 많아지면서, 시청자들이 비슷한 유형의 드라마에 쉽게 식상함을 느끼는 것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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