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대해 끊임없는 요구와 통제에 지친 직원이 며칠을 고심한 끝에 해결책을 내놓았다. 스티브 잡스가 스스로 다자인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철학자의 디자인 공부>(홍시. 2012년)는 디자인을 철학의 현미경을 들여다 본 책이다. 디자인은 역사는 짧지만, 스티브 잡스가 보여주듯 만만치 않은 철학적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먼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듯 한 이 단어의 정의를 막상 내리기는 어렵다. 책은 1장 ‘디자인의 역설’을 통해 ‘만인에게 알려진 분야다. 그렇기에 이런 분야가 오늘날 이토록 막연한 개념 속에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히 놀랍고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라는 설명으로 강력한 화두를 던진다.
디자인의 역사는 일천하지만 그 과정은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디자인에 대한 양면성의 지적은 바로 철학이라는 학문의 깊이 속에서 나온다.
‘디자인은 사회주의의 고안물이다. 영국에서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산업화에 맞서 저항하는 과정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자본주의의 고안물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공업 생산을 받아들이면서 태어나 미국에서 ‘산업 디자인’이라는 형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모순된 개념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것이다.‘- 본문중
책은 디자인에 대한 정체를 ‘디자인 효과‘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형태조화 효과‘이다. 즉 형태적인 아름다움의 효과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형태를 만들고, 그것에 특징을 담고, 기능 따위를 표현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사회조형 효과‘. 다른 말로 사회개혁 효과이다. 새로운 예술 양식을 창조함과 동시에 삶을 개조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부분이 철학적이다. 바로 ’경험 효과‘이다. 디자인은 살아가고 느끼고 경험하는 그 무엇이다. 이를테면 애플의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이들은 모두 이 기기를 통해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새롭고 짜릿한 그 무엇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72쪽
아마도 아이폰을 써본 이들은 이 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것이다. 버튼 없이 매끄럽게 이뤄지는 ‘터치’ 하나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사실은 새로운 경험 그 자체이다.
이 책은 철학이란 칼로 디자인을 완전 해부했으며, ‘철학적인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일종의 비평서다. 동시에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