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에도 간다에 있는 한 장신구 가게에서 시작된다. 주인 내외의 부지런한 연구와 노력으로 에도에서 멋스러운 주머니가게로 자리 잡는다. 특이한 것은 이곳에서 기이한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이다. 바로 주인 내외가 조카 딸 오치카를 위해 만든 ‘괴담’대회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한 번에 한 명. 이야기를 듣는 이도 단 한 명뿐이다. 일명 ‘흑백의 방’으로 불리는 곳에 찾아 온 참가자들은 가슴속에 묻어둔 은밀한 이야기들을 털어 놓는다. 흑백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지켜야할 규칙은 단 하나다.
“흑백의 방에서 나누는 대화는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는 것이 규칙입니다.” -189쪽
주인공 오치카의 단호하지만 정갈한 대답이다. 흑백의 방을 찾아오는 인물은 모두 네 명이다. 그들에게는 각자 가슴에 품고 말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산신과 인간 소년의 우정이야기, 쌍둥이 자매의 애절한 사연을 거쳐 기이한 생명체 안주 구로스케의 속사정과 한 남자의 무서운 원한으로 끝난다.
미야베 미유키의 전작에 비하면 밝은 느낌도 있지만, 괴담 대회인 만큼 괴담은 괴담이다. 소설 속 ‘직접 얼굴을 대면해 이야기를 말 하고 듣는’ 설정은 요즘 시대에 다소 뜬금없다. 스마트한 시대에 발품을 팔아 기괴한 이야기를 털어놓다니. 하지만 그래서 더 신선하다.
또한,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중심이 보인다. 바로 사람 사이의 소통이다. 이것은 괴담대회라는 설정으로 서로를 대면하게 한다. 이 같은 저자의 의도는 책에 실린 편집 후기를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부풀려진 새로운 정보가 초단위로 오고가는 현실 속에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귀에서 귀로 전해지는 이야기야말로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괴담의 이상적인 형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마주 보고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575쪽
한 장신구가게에서 열리는 괴담대회. <안주>는 늦여름 혹 겨울이 되더라도 어울릴만한 괴담이야기다. 작가가 현재 시리즈의 다음 권도 연재하고 있다니 미야베 미유키의 단골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