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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해체 반대…장하준 경제철학 ‘정치권 스탠더드’ 되나
금산분리·출총제·순환출자
여야 근거없이 무차별 남발
통합보다는 되레 갈등만 유발

새누리당내 그룹간 찬반 격렬
장하준식 경제민주화로 절충 기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의 경제민주화 담론이 최근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쟁에 준거점이 될 전망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과 여기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과감히 걷어내면서도 경제 작동 원리에는 충실하려는 장 교수의 경제학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대립에 균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부터 Z까지…중구난방 경제민주화=18대 대선을 100여일 앞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여야는 물론 당내에서도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켠에선 재벌해체를, 또 다른 쪽에선 사회 양극화 해소 등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온도차는 극명하다. 특히 재벌구조를 비롯해 노동, 복지, 환경 등 각론에 들어가면 갈래는 수없이 뻗어나간다.

가령 금산분리와 출자총액제한제도, 순환출자 등 표류하는 정치권발 경제민주화의 대표적 예로 꼽히고 있다.

금산분리에 있어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은 삼성금융지주와 같은 중간금융지주 회사 도입을 안으로 내놓았다. 산업자본의 은행자본 지분을 9%에서 4%로 환원해야 한다는 민주통합당의 안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하지만 경실모 내부에서도 현실적인 여건 등을 감안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장 중간금융지주 회사를 도입하기보다는 재무 적격성 평가에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부문을 평가해 실질적인 규제를 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담론은 ‘통합’보다는 ‘갈등’만 유발하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르고 있다.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의 설전은 이의 한 단면이다.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를 향해 “진정성이 없다. 대국민 쇼일 뿐이다”며 비판에 핏대를 세우고 있고, 새누리당은 이에 질세라 “민주당의 경제민주화는 현실성이 없다. 경제를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해만 고려해 포퓰리즘으로 나가고 있다”며 맞받아치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한 전문가는 “최근 정치권에서 생산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각종 정책들은 어떤 틀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경제민주화가 군더더기 이론으로 전략하는 면도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장하준식 경제민주화, 준거틀 마련하나=최근 정치권에서 장하준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데에는 이 같은 중구난방식 경제민주화에 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장하준과 그의 경제 이론이 내뿜고 있는 이미지가 각개전투식으로 흐르고 있는 대립에 균형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저서와 강연에서 나타난 장 교수의 경제민주화는 ‘복지 확대’와 ‘자본주의 근간 안에서 적절한 대기업 규제’로 요약 가능하다. “시장과 민주주의 모두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안 된다”며 노동권 강화, 노동자와 소생산자를 비롯한 작은 경제 주체들의 ‘민주적 담합’의 필요성을 강조, 복지와 대기업 차등 규제 확대 등을 강조했다.

반면 “주주 간의 싸움은 민주주의와 관계가 없다. 이건희ㆍ정몽구 가문의 힘을 줄이고 1원 1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없다”며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재벌 지배구조에 직접 간섭하려는 정치권 일각의 급진적인 시도에는 강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양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대립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장 교수가 최근 한 국내 강연회에서 경제민주화와 관련, “재벌을 쫓아내는 것이 아닌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가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말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중구난방으로 치닫고 있는 당 내 갈등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될 것도 기대했다. 사실상 재벌 해체를 말하는 소장ㆍ쇄신파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 자체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정책 그룹 사이에서 ‘장하준식 경제민주화’로 절충점을 찾겠다는 의지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이와 관련, “상징 정치의 측면이 있다.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라는 상징적 측면에서 진보진영의 대표학자를 언급하는 화법은 당의 공약이나 후보자의 의도를 국민에게 어떤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려는 것”이라며 “영국 수상 대처가 ‘영국병을 치료해야겠다’면서 개혁을 강조하고, 등소평이 ‘흑묘백묘론’ 얘기하며 실용적인 노선을 갔던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최정호 기자>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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