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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시대의 터부, 그 어리석은 실체는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지진도, 쓰나미도, 양심 없는 정치인도, 탐욕스러운 경영자도, 수상한 음모자도 아니다. 바로 전 세계에 걸쳐 모든 분야를 휘감고 있으며 역사상 유례없이 전개되고 있는 거대한 어리석음이다.”(서문 중)

‘문제적 글쓰기’로 화제를 불러모으는 독일 출신의 철학자 미하엘 슈미트가 ‘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 마라’(고즈윈)에서 보여주는 독설은 거침없다. 그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을 조롱하며, 이는 탭댄스를 추는 지렁이, 관료주의적 쥐처럼 우스꽝스러운 말이라고 빗댄다. 그 대신 그가 제안하는 용어는 ‘호모 데멘스(Homo demense)’, 즉 광기의 인간이다.

어리석음과 현명함을 가르는 그의 기준은 더 나은 세상,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쓰여야 할 지성이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인간은 더 이상 어리석을 수 없다. 서로를 속이고 빼앗고 착취하고 학살하는 데 지성을 써왔다. 그런 게임에서 권력과 부를 거머쥔 승자도 비참하긴 마찬가지다. 성공의 결실을 꽉 움켜쥔 채 자신도 속아넘어가고 빼앗기지 않을까 불안하게 살아간다.

그가 늘어놓는 인간의 어리석음의 실체는 사실 만만한 게 아니다. 종교전쟁, 일회용 소비사회, 돈의 상품화, 생태운동 등 시대의 터부들이다. 그렇다고 그는 비켜가는 법이 없다.

슈미트는 먼저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화두인 ‘만들어진 신’ 논쟁에 끼어든다. ‘유대교의 망상과 반유대주의적 광기’란 주제 아래 그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오랜 반목, 이슬람 내 다툼과 전쟁의 역사를 훑어내려 오며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고 부조리한 데 빠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이 가상으로 만들어낸 것에 오히려 붙들려 서로 죽이는 일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그는 “어리석은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가 명백히 부조리함에도 이를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관 면에서 매우 큰 장애가 있지만 기술이나 전략 면에서는 매우 지능적일 수 있다”며, 종교적 어리석음은 부분 발달장애로 간주돼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경제적 어리석음 역시 그의 난타를 피해갈 수 없다. 제품의 수명을 짧게 만들어 나가는 일이야말로 어느 모로 보나 제 살 깎아먹기다. 자원을 소비하고 쓰레기가 쌓이고 기후 등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데도 집단적 어리석음에 빠져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전자 변형 토마토와 같은 녹색 유전공학을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의 무지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많은 유럽인이 녹색 유전공학을 ‘비자연적’이라며 거부하는 현상은 생명공학에 대한 지식 부족과 자연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 탓이란 지적이다. 자연이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유기체의 게놈이 인간의 개입 없이 저절로 변화되고 있는데도 여러 환경운동가는 여전히 자연을 특정 상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어리석은 정치가에 대한 그의 비난은 더 싸늘하다.

그는 정치판은 창의적이면서 감정을 이입할 줄 알고 고민하는 인간이 아닌 단조로움과 편협함, 기회주의적 성향이 확실한 어리석은 인간으로 가득 차 있다며, 정치적 어리석음은 ‘메가톤급 어리석음’이라고 힐난한다.

그의 비난의 화살은 경제학자, 언론 종사자, 철학자 등도 비켜가지 않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지점은 자성이다. 아둔한 우리가 아둔한 정치, 아둔한 경제, 아둔한 종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특히 질적 수준이 낮은 매체의 프로그램들은 매일 밤낮으로 인간의 사고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오늘날의 매체 책임자는 프로그램 수준이 낮더라도 시청자를 그저 즐겁게 해주면 된다는 생각뿐이라는 것.

이 어리석음의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소수의 참여적 행동이다. 비도덕적인 인간에 분노하며 책임을 묻는 것으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즉, 시스템의 변화가 필수다.

그가 문제 삼은 내용들은 이성적인 판단 하에 얼마든지 수긍할 만한 것들이란 점에서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비이성에 휘둘리는가를 보여준다. 인류 역사를 툭툭 건너뛰며 마치 토크쇼 패널처럼 신랄하고 통쾌하게 펼쳐나가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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