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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소설가 이승우, 김연수가 바라본 삶의 진실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천산 수도원의 벽서는 우연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벽서에 의지가 있다면 결코 그렇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을 거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렇게 알려지는 것이 그 벽서의 운명이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이승우의 ‘지상의 노래’ 중)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인생으로 회상한다.”(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중)

소설의 내용이 다르고 스타일과 맛이 전혀 다른데도 바라보는 지점이 같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우리 문단의 깊이와 폭을 넓혀온 소설가 이승우와 김연수의 신작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 알고 있지만 실은 모르고 있는 것, 삶의 진실에 대해 묻는다.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민음사)는 욕망과 행동의 묘한 낙차, 역사적 현실과 초월적 세계의 건너뛰기를 여러 등장인물과 사건을 통해 에둘러 보여준다.

여러 개의 이야기가 얽혀 있어서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구조다. 이야기는 여행작가인 형이 남긴 원고를 보고 천산 수도원의 벽서를 찾는 강상호의 얘기로 시작된다.

서해가 내려다 보이는 해발 890m의 천산 정상에 세워진 수도원은 세상보다는 하늘과 가까운 곳처럼 보이는 곳이다. 수도원 지하에는 72개의 작은 방이 있고 벽마다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다. 이 벽서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새겼는지 강상호는 궁금해하며 형의 유고집을 마저 완성해 펴낸다.

그 책에 해설을 붙인 교회사를 전공한 차동연은 한때 1000여명이 신자가 몰렸던 천산 수도원이 어떤 연유로 문을 닫게 됐는지 마을 노인을 찾아 이것저것 캐묻는다. 그러다 주워 들은 한 마디가 입구에 초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얼마 뒤 한 노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천산 수도원 수도사들에 관한 얘기를 들려준다. 역사의 질곡과 정치의 왜곡 속에서 사회유해한 자들로 몰려 3평 남짓한 한 방에 모두 갇혀 매장된 것이다. 무겁고 엄청난 역사적 사실로 읽힐 만한 이야기지만 작가는 이를 초월적 문제로 승화시킨다.

30년 후 발굴된 수도원 지하의 모습은 방을 막았던 벽의 자취는 없다. 한 방에 있어야 할 시신들도 없다. 대신 수도사들이 자신의 무덤으로 여긴 각자의 방바닥 밑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마지막 방엔 머리가 미처 파묻히지 못한 들려있는 유골 하나가 발굴된다.

작가는 전지적 시점의 화자를 통해 종종 목소리를 드러낸다. 그가 천착하는 건 죄와 죄의식, 즉 자기자신을 속이는 문제 같은 것이다.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죄로서 심판을 받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는 문제는 겉으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자기가 스스로를 속인다는 사실을 모르기도 하고, 알면서도 어떤 필요에 의해 스스로 착각을 하기도 한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의 속살을 헤집고 벌레 먹은 썩은 자리를 드러내 보여준다.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자음과모음)은 열일곱 고등학생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생후 6개월에 미국 중산층 백인 가정으로 입양돼 성장한 작가 카밀라 포트만의 뿌리찾기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이들이 기억하는 일은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편집돼 있다. 정지은과 총각선생을 둘러싼 스캔들, 조선소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다가 끝내 투신자살한 지은의 아버지, 지은의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도 함께 죽었다고 생각하는 미옥, 미옥의 지은에 대한 투서, 그에 동조한 윤경과 정희, 학교 뒤 서양인이 살았던 양관에 산 사람들의 비극적 이야기가 서로 얽힌다.

진남의 이야기 박물관 ‘바람의 말 아카이브’는 바로 기억의 저장소다. 한 장의 사진은 많은 말을 담고 있고, 한 편의 영상은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내가 알고 있던 기억은 다른 기억과 만나 진실을 구성한다.

작가는 ‘일어날 수도 있었던, 하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은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을 건너오지 못하고 먼지처림 흩어진 고통과 슬픔의 기억들’에 대해 얘기하며 과거와 화해하는 일, 심연을 건너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며 복잡다단한 구성을 즐기는 김연수 특유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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