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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 & 아트> 빨간 유토피아…그 속내는 잔혹함으로 물든 디스토피아
‘붉은 산수’ 작가 이세현 10월 14일까지 ‘플라스틱 가든’展
분단현실·산업화의 상처 표현
‘비트윈 레드’ 연작등 25점 한자리에

강렬한 오방색 신작 ‘레인보우’
억압의 상징 분재에 담아내


온통 붉은색이다. 흰 캔버스를 핏빛으로 물들인 산과 강, 그리고 섬과 집들이 눈을 찌른다. 이세현(45)의 ‘붉은 산수’다.

이세현은 ‘붉은 산수’로 오랜 무명시기를 딛고, 국내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작가다. 해외에서의 전시 초대가 줄을 잇는 바람에 국내 전시는 미뤄져왔다. 때문에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본관과 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이세현의 그 소문난 ‘붉은 산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모처럼의 자리다.

▶“붉은색, 저도 두려워요. 그런데 참 아름답죠”=한옥으로 된 학고재갤러리 본관에 들어서면 이세현의 ‘붉은 산수’ 대작들이 흰 공간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분명 우리 산천을 그린 풍경화인데 비현실적이다 못해 환각을 불러올 만큼 쇼킹하다. 녹색이 아닌 새빨간 풍경이라니….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자연을 뜻하는 ‘플라스틱 가든’이라는 타이틀 아래 열리는 이세현의 개인전에는 트레이드마크인 붉은 산수, 즉 ‘비트윈 레드(Between Red)’ 연작 14점이 내걸렸다. 작품들은 단순한 풍경화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쓰러져가는 건물과 군 초소, 포탄의 흔적이 삽입돼 우리의 아픈 기억을 건드린다.

그가 ‘비트윈 레드’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5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와 영국의 첼시대학원을 다니던 중 ‘과연 나다운 그림은 무엇일까’ 고심하다가 한국의 역사와 상처를 붉은 산수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군복무를 하며 야간투시경을 쓰고 바라봤던 아름다왔던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원래는 녹색이지만 붉은색을 골랐죠. 금기시됐던 색이었기에 저 역시 두려웠지만 너무 매혹적인 색이라서요.”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겐 금기시됐던 붉은색으로 우리 산하를 강렬하게 그린 이세현의 유화‘ Between Red-152’. 95×200㎝, 2012. 아름다움과 비극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새로운 풍경화다.             [사진제공=학고재]

분단된 한국의 현실과 산업화로 피폐해진 인간과 산천을 표현한 이세현의 ‘비트윈 레드’ 연작은 해외 화단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그를 단박에 유명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스위스의 유명 컬렉터인 율리 지그는 “지구촌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 작가 중 그 비극성을 다루는 작가를 못 만났는데 당신 작업에서 이를 봤다”며 크게 반겼다. 지그는 이세현의 작품 10점을 소장 중이다.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이세현의 붉은 산수는 동시에 인간에 의해 파괴된 디스토피아이기도 하다. 몸속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뽑아내 그린 듯한 그림은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품으며 세상의 양면을 우리 앞에 강렬하게 드리운다.

▶동시대 아픔과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는 신작=이세현은 이번 개인전에 기존의 ‘비트윈 레드’ 연작 외에 신작인 분재 회화, 분재 조각을 함께 선보인다. 총출품작은 25점.

기존 작품들이 역사의 상처와 사라진 풍경을 다시점으로 표현했다면 신작인 ‘레인보우’는 동시대 아픔과 왜곡된 사회현실을 강렬한 오방색으로 보여준다. 독특한 것은 ‘분재’처럼 인위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작가는 동양에서 미의 총아로 불리는 ‘분재’가 기실은 인간의 잔혹함과 억압의 산물임에 주목했다.

신작들은 한 가지 색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이 갖게 되는 제한성을 뛰어넘고자 고민한 흔적이 드러난다. 작가는 “어린 시절 무당집을 자주 찾았다. 무당집의 화려한 색깔과 알싸한 공기, 그것에서 이번 신작이 비롯됐다”고 밝혔다. 이세현은 이번에 조각에도 도전했다. 4점의 대형 조각 또한 우리의 비극적 역사와 현 상황을 형상화한 것으로,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함으로써 아날로그의 질박한 힘을 묵직하게 보여준다. (02)720-1524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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