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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2> “예술가마다 각자의 시간표…성공보다 과정을 사랑하라”
‘중국 현대미술의 아이콘’ 장샤오강 e-메일 인터뷰
무표정, 규격화 강요당한 인간의 비장감
아름다움, 전형적 가족의 권위적 미의식

고요한 표면속 응어리 가득찬 내면 그려
내 작품 차용한 다양한 아트상품 긍정적


‘중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인 장샤오강(張曉剛ㆍ54). 회색 톤의 화폭에 촉촉한 눈망울을 지닌 인물을 커다랗게 그려넣은 그의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인의 모습을 이렇듯 차분하고도 서정적으로 표현한 그림은 없었기에 그 반향은 컸다. 전 세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한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대표 주자 장샤오강이 서울에 온다. 그는 헤럴드경제, 코리아헤럴드를 펴내는 (주)헤럴드가 역점 사업으로 오는 9월 20~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펼치는 ‘Re-imagine!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2’에 ‘예술멘토’로 참여하기 위해 내한한다. 그를 e-메일로 미리 만나봤다.



-당신의 그림 속 인물들은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첩을 본 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갸름한 얼굴에 무표정한 모습이다.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 ‘대가족’이란 작품을 막 시작했던 때가 1993년 무렵이었다. 정성껏 단장하고 카메라 앞에 선 옛 사진 속 인물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사진들은 내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매우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찌 보면 그런 규격화된 표정들은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규격화를 강요당한 사람들이 갖는 일종의 비장감 같은 것이었다. 이는 중국 문화가 오랫동안 지녀왔던 특유의 심미의식이다. 다분히 몰개성적이고 중성적이지만 ‘시적 의미로 충만한’ 아름다움은 전형적인 중국 전통대가족의 권위적 미의식이다. 집 내부에서 찍은 일련의 사진들은 보다 사적이다. 과거 우리는 모두 대가족의 일원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친족관계를 넘어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 배웠다.

-그렇다면 집단주의로 봐도 되나.

▶집단주의 관념은 사실상 중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투영돼 있다. 쉽게 벗어날 수도 없다. 이렇듯 사적이고 규격화된 관념들이 나의 그림 ‘대가족’ 속에 응축돼 있다. 우리는 서로를 제약하지만 또 서로 의지하기도 한다. 이렇게 애매한 가족관계가 바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다. 이런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나는 기존 관계들을 재해석하고자 했다. 표면적으론 물처럼 고요하지만 그 내면은 각양각색의 응어리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상태를 그리고 싶었다.

-망각과 기억은 당신 작업의 중요한 키워드다. 색상도 잿빛 일색이다. 너무 과거지향적이라고 생각지 않나.

▶블랙과 화이트를 주로 쓰는 것은 옛 사진들이 대부분 흑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흑백이 아니라 ‘퇴화’를 추구한다. 즉, 색채가 주는 효과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가끔 빨간색이나 노란색을 곁들이기도 하는데 나는 대비감을 즐긴다. 흑백의 작품에 온기를 넣으려는 게 아니라 흑백 대비의 분위기를 더욱 돋우려는 시도다.
‘중국 현대미술의 아이콘’ 장샤오강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표면적으론 물처럼 고요하지만 그 내면은 각양각색의 응어리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상태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은 사진들은 그의 작품 중 110억원에 낙찰된‘ 영원한 사랑’(위부터),‘ 가족’.

-당신의 ‘대가족’ ‘망각과 기억’ ‘혈연’ 등 가족그림 시리즈는 격변기 중국인의 긴장과 불안심리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는다. 동의하는가.

▶나는 개혁ㆍ개방의 풍조 속 개인의 심리, 즉 내밀한 부분에 집중했다. 내게 가장 절실했던 것, 내가 가장 그리고 싶은 것을 표현한 것이다.

- ‘중국인의 정체성’을 키워드로 한 당신의 인물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팬을 확보하며 작품 값 또한 수직 상승 중이다. 지난해 4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유화작품 ‘영원한 사랑’은 7906만홍콩달러(약 110억원)에 낙찰되며 중국 현대미술 사상 최고낙찰가를 기록했는데 예상했었나.

▶몇 년 전까지도 경매 결과에 관심을 갖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무감각해졌다. 경매는 작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영원한 사랑’도 전문가들이 높은 낙찰가를 예상해서 막상 결과가 나왔을 땐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지난해 심장수술을 받은 뒤 당신의 작업관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당신에게 예술(미술)이란 무엇인가.

▶수술 이후 건강이 좋아졌다. 그런데 건강상의 문제가 내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기존의 작품 세계와) 열애에 빠져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늘 하고 싶은 예술이다.

-당신을 중심으로 한 차이나 아방가르드 미술과 중국 현대미술은 세계를 풍미했으나, 서양에서는 여전히 한때의 유행처럼 비판적 시선으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전업작가로서 예술은 그 자체가 목표이자, 생활이다. 자아를 추구한다는 예술적 이상은 그래서 본질적인 부분이다. 그것(예술이라는 생활방식)이 기타 다른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제는 예술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당신 작품을 활용한 판화며, 각종 아트상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디자인은 내 영역이 아니지만 내 작품이 아트상품의 모티브로 차용돼, 보다 많은 이가 내 작품을 즐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작가들은 빨리 성공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가마다 각자의 시간표가 있는 법이다. 예술의 성장 과정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예술가로서, 젊든 늙었든 간에 예술의 역사를 사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예술가라면 응당 예술을 보는 관점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삼아야 한다. 


<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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