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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미술관 설립한 안병광회장 “그림에도 저마다 인연이..”
“약을 팔기 위해 30년 전부터 병원을 드나들었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은 늘 찌푸린 모습이었어요. 밝고 명랑한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니 그렇겠죠. 그들에게 미술을 가까이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굳었던 마음이 부드럽게 녹을테니 말이죠”

안병광(54)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은 우리 미술계에서 제법 알아주는 컬렉터이다. 한국 근현대미술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해온 그는 이중섭의 대표작인 ‘황소’를 지난 2010년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사들이는 등 작품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이중섭의 그림 3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또 한묵 박고석 이봉상 남관 변종하 이대원 전광영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잇따라 수집했다. 그가 그간의 컬렉션을 일반 대중과 함께 향유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서울미술관을 설립했다. 


오는 29일 개관하는 서울미술관은 사립미술관으로는 삼성미술관 리움(Leeum) 다음으로 큰 규모(전시면적 500평)로, 미술관 뒷편에는 조선말기에 지어진 흥선대원군의 별서 ‘석파정’(1만3000평)이 연결돼 있다. 1850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파정은 인왕산 북동쪽 바위산 기슭, 옛 한성의 경승지의 하나로, 현재 조선시대 전통가옥(안채, 사랑채, 별채)과 중국풍 정자, 아름다운 정원 등이 남아 있다. 조선 철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세도가 김흥근(金興根)의 주도로 조영된 이 근대유적은 후일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이 되며, 그의 호를 따 ‘석파정으로 명명됐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26호이며, 사랑채 서쪽 뜰에는 서울시 지정보호수 제60호인 노송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안 회장은 두차례에 걸쳐 경매에서 유찰됐던 석파정을 지난 2006년 65억원에 매입했다. 


이에따라 서울미술관은 고졸한 전통한옥과 석탑, 기암괴석, 인왕산의 빼어난 풍광, 그리고 지하 3층 지상 3층의 최첨단 현대미술관이 어우러진, 서울 도심의 보기 드문 복합문화공간이 될 전망이다. 미술관 관람료 9000원을 내면 전시도 보고, 너른 석파정 일대를 둘러보며 휴식도 취할 수 있다.

안 회장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연매출 3000억원에 육박하는 의약품 유통업체 유니온약품그룹을 일으킨 기업가다. 요즘도 마음만은 여전히 ‘현장을 누비는 영업맨’이라는 그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소나기 때문이었다.

“1983년이었어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서울 명동의 성모병원을 찾았다가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났어요. 병원 옆 액자가게 처마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데 ‘황소’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 거에요. 지금껏 보지 못했던 독특한 소 그림이라 저절로 빨려들어갔죠. ‘소를 저렇게도 그릴 수 있구나’하고 감탄하면서요. 그래서 수중의 돈을 탈탈 털어 7000원에 샀습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그림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주며 “이 그림은 오리지날이 아니라 복제 프린트”라고 귀뜸했다고 한다. 안 회장은 아내에게 그림을 내놓으면서 ‘언젠가는 진짜 황소 그림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이중섭과의 인연은 1987년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이사해 시인 구상 선생과 이웃이 되면서 더욱 깊어졌다.

“이중섭과 절친했던 구상 선생은 늘 이중섭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그 절박했던 생애와 예술혼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짬 날 때마다 발품을 팔아가며 이중섭 그림을 보러 다녔죠. 제약업 종사자인 제가 이중섭과 이렇게 인연이 이어지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문제의 ‘황소’의 진품이 경매시장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나 반가와 앞뒤 생각않고 낙찰받았습니다.”



아내와의 오랜 약속을 지키게 된 안 회장은 이에 머물지 않고 서울미술관을 지어 소장 중인 이중섭 작품들을 일반에 공개하게 됐다.

“이제 미술관을 만들고 개관했으니 그림들은 내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전시와 알찬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을 대표할만한 미술관으로 키워야죠. 무엇보다 서울 한복판에 석파정이라는 멋진 문화재와 현대미술이 공존하는 곳이니 더 특색있지 않을까요?” 서울미술관의 옥상정원은 석파정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돼 개관과 함께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석파정도 일부 개방하게 된다.

아울러 서울미술관은 특정 사조, 양식, 장르, 시대에 쏠리지않고 국내외 현대미술계의 다양한 흐름을 일반에게 알기 쉽게 소개할 방침이다. 초대 관장은 미술평론가이자 저술가인 이주헌(51) 씨가 맡았다. 이 관장은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 - 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이란 타이틀의 전시를 개관전으로 꾸몄다. 전시타이틀의 ‘둥섭’은 이중섭의 이름을 서북지방 방언으로 표기한 것이다.

전시는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2년 12월, 부산 르네상스다방에서 동인전을 열며 척박한 시절에도 예술에의 의지를 다졌던 이중섭, 한묵, 박고석, 이봉상, 손응성과 후배작가 정규 등 근대 거장 6명의 회화 73점을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진귀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그림은 역시 이중섭의 ‘황소’. 지난 2010년 경매 에 출품된 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우리 근대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문제의식을 지녔던 작가 이봉상의 그림도 유족의 협조로 15점이 나온다. 그의 작품은 그간 일반에 거의 공개된 적이 없어 이번 기회를 통해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또 ‘산의 화가’로 잘 알려진 박고석의 미공개 추상화 2점도 내걸린다.



미술관측은 전시장 한켠에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내려간 작가에게 발표의 장을 제공해주었던 당시 다방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예정이다.

이주헌 관장은 “이번 개관전은 고난 속에서도 예술과 창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르네상스처럼 찬란한 문화예술의 꽃을 피웠던 근대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그들이 남긴 유산의 가치를 다시한번 느껴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21일까지 열린다.

한편 전시 기간 중 2층 전시실에서는 서울미술관의 소장품에 개인수집가들의 컬렉션을 더한 ‘Deep & Wide’전이 펼쳐진다. 김창열 남관 전광영 박생광 변종하 백남준 유영국 이대원 전광영 천경자 화백의 대작들이 내걸릴 예정이다. 02-395-0217 <작품사진=서울미술관>

글,사진=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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