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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답하라 1997’, 추억팔이 그 이상의 ‘무엇'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1990년대를 추억하는 콘텐츠로 영화 ‘건축학개론’이 크게 히트한 바 있다.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도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이 시기도 복고형 콘텐츠로 충분히 조명될 만하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이 어필한 것은 과거를 그대로 재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tvN 시트콤 ‘응답하라 1997’도 1990년대를 회상하는 복고형 콘텐츠다. 여기에도 옛 기억을 떠올리고 그 시간만큼은 추억에 잠겨 실컷 웃을 수 있는 공감을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성장속도가 다를 때 문제가 나타난다’는 성장통의 문제, ‘불편한 진실도 껴안아야 한다’ 등 현재의 관점으로 대입시킬 만한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공한다.

아울러 학창시절 1990년대를 통과한 이들의 현재 상황도 그 연장선상에서 슬쩍슬쩍 보여준다.

이 시트콤은 1997년 부산 광안고에 다녔던 학생의 과거 이야기와 15년이 지난 현재 고교 동창회 모임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데, 3회의 현재 시점에서 한 친구가 “대통령은 얼굴로 뽑아도 되지 않나? 하는 일도 별로 없는데, 외국 갈 때 원샷이라도 잘 받아야지”라고 말하는 건 이 세대의 정치성향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1997년도는 어떤 해인가. IMF로 인한 신자유주의 질서가 생기기 직전이다. 지금 50~60대가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부르며 통기타의 낭만을 즐기는 것으로 70~80년대의 젊은 시절을 보냈다면, 버블경제의 끝자락에 있었던 1997년은 마지막 낭만이 있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기에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이들 2030세대는 현재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선배 세대보다 학벌ㆍ성적 등 ‘스펙’에 더욱 신경써야 하고, 집 장만도 훨씬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15년 전만 해도 오빠 누나를 향한 열정이 있었고, HOT와 젝스키스를 추종하는 ‘빠순이’와 ‘빠돌이’로 살아봤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남녀 고교생이 서면극장에서 영화 ‘접속’을 보고 각각 청순한 전도연과 멋있는 한석규에 대해 열을 뿜으며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면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은 모습이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복고와 추억이 단순히 과거를 음미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과거를 이미지와 감수성으로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형성된 가치관과 정서의 주춧돌로서 바라보는 것이다. ‘응답하라 1997’이 그 당시에 대한 그리움으로만 흐르지 않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 속에는 매회 복고와 연결된 따뜻한 메시지가 있어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포인트가 있다.

이 중심에는 HOT와 젝스키스로 대변됐던 19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HOT 광팬, 일명 ‘1세대 빠순이’ 성시원(정은지)이 있다. 친구들에게는 이름보다 ‘안승호(토니 본명) 부인’으로 불렸다. ‘토니빠’인 시원은 HOT 공연을 보는 도중 안무를 똑같이 따라하고, 토니오빠 집이 있는 서울에 갔다오다 토니를 ‘원숭이’라며 무시하는 아빠(성동일)에게 머리를 타조처럼 깎이기도 한다. 걸그룹 에이핑크의 정은지는 드라마에 빠져들게 할 정도로 맛깔나게 부산 사투리를 구사한다.

시원은 학창시절 공부는 전교 꼴찌였지만 하이텔에서 HOT 인기 팬픽 작가였던 이력을 발판삼아 지금은 예능작가로 활동한다. 일은 하지 않고 나무 위에 앉아 노래만 부르고 노는 ‘베짱이’였지만 이 노래로 음반을 취입해 가수로서의 직업을 갖춘 격이다. 여름내내 일만 하다 서울대에 간 ‘개미’가 부럽지 않다.


시원을 좋아하는 순정훈남 윤제(서인국)에게 단짝친구 모유정(신소율)이 사랑을 고백했다는 말을 듣고는 지금까지 윤제를 친구로만 여겼던 시원도 묘한 감정에 빠진다. 영호남 부부로 고스톱을 치는 시원 부모(성동일과 이일화)는 존재만으로도 웃음을 준다.

이 시트콤에는 당시 음악과 다마고치, 삐삐, PC통신 등 당시 소품과 풍속도를 너무나 구체적으로 묘사해 “나 학생 때와 완전 똑같네”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KBS에서 ‘남자의 자격’을 연출한 신원호 PD와 ‘1박2일’의 이우정 작가가 힘을 합치면 히트하는 이유가 있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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