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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몬트리올 이전 잊혀진 영웅들
1948년 런던 역도 김성집
1948년 런던 복싱 한수안
1952년 헬싱키 복싱 강준호
1956년 멜버른 역도 김창희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10-10’, 즉 금메달 10개-종합 순위 10위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두자릿수 금메달은 올림픽에서 당연히 거둬야 할 성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대한민국의 올림픽 10위권 진입의 역사는 1984년 LA올림픽에 와서야 시작됐다.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양정모 선수가 일궈냈다. 그러나 첫 번째 금메달 이전에 28년간 7번의 올림픽 도전과 12개의 은메달 및 동메달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신생 독립국의 설움을 털고 들어 올린 값진 동메달=대한민국 국적 최초의 메달리스트는 김성집(93) 대한체육회 고문이다. 1948년 런던올림픽 역도 종목에 출전한 김 고문은 동메달을 따낸 데 이어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김 고문은 대한민국 선수로는 최초로 2회 연속으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선수이기도 하다.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몬트리올올림픽 이전까지 수확한 대한민국의 동메달 수는 총 7개다. 김 고문 외에 1948년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한수안, 1952년 헬싱키올림픽 복싱 강준호, 1956년 멜버른올림픽 역도 김창희, 1964년 도쿄올림픽 유도 김의태, 1968년 멕시코올림픽 복싱 장규철이 메달의 주인공들이다.

▶전후 시름에 빠진 국민들에게 날린 희망의 강펀치=1956년 멜버른올림픽 복싱 밴텀급 결승전은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올림픽 무대 결승전이었다. 주인공은 송순천(78) 전 용인대 교수. 송 전 교수는 동서독단일팀의 볼프강 베렌트를 맞아 3라운드 내내 우세를 지켰다. 그러나 결과는 베렌트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베렌트의 국적은 동독이었고 결승전의 심판 4명 중 3명이 공산국가 출신이었다. 명백한 편파판정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역사가 20년 당겨질 수 있었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베렌트는 7년 후 대한올림픽위원회를 통해 편지를 보내 송 전 교수에게 “그날의 경기는 당신의 승리였다”고 고백했다. 이후 몬트리올올림픽까지 1964년 도쿄올림픽의 복싱 정신조ㆍ레슬링 장창선, 1968년 멕시코올림픽 복싱 지용주, 1972년 뮌헨올림픽 유도 오승립까지 4개의 은메달 릴레이가 더 이어졌다.

▶북한의 금메달은 남한보다 빨랐다?=북한은 첫 출전인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염을 토했다. 남자 사격 소구경복사에 출전한 북한의 이호준은 600점 만점에 599점이라는 신들린 명중률로 세계 신기록 1위를 차지했다. 이호준은 시상식에서 “원수(박정희)의 심장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소름 끼치는 소감으로 올림픽 위원회 위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정진영 기자>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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