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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대…詩가 돌아왔다

혼돈의 시대 상처받고 방황하는 이들
따뜻한 서정 살아있는 시로 위로받아

시집 올 상반기에만 693권 출간
출판계 최대 불황 속 매출 4% 성장
최대 소비층은 40대 여성 전체 20%



 두 달 전,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라 지금까지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류시화 시인의 창작 시집(詩集)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중 한 편의 시다. 고정 독자층이 있는 류 시인이지만 이번 시집은 이전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그의 다른 창작 시집의 판매 속도보다 놀랄 만큼 빠르다. 시집을 출간한 고세규 문학의숲 대표는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하다”며 반겼다.

예스24가 올 상반기 출간된 시집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상반기 출간된 시집은 693권으로, 전년 대비 20%나 늘었다. 매출도 4%나 성장했다. 출판계가 출판 종수의 감소, 마이너스 성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불황을 겪고 있는 터에 놀라운 반전이다.

시집을 구매한 층은 40대 여성이 전체 구매의 20%를 차지하며 최대 시 소비층으로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10대는 3%, 20대 21%, 30대 27%, 40대 35%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시 선호가 높다. 이 중 눈에 띄는 현상은 40대 남성들의 변화다. 2010년부터 해마다 1%씩 성장률을 보이면서 올해 14%까지 올랐다. 


폭발적인 시집 출간과 시의 소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문화의 영향이 컸다. 2011년 아줌마들의 ‘현빈앓이’를 낳았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은 시의 귀환에 큰 공을 세웠다. 현빈이 들고 있던 진동규 시인의 시집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은 방송 직후 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올 상반기엔 노(老) 시인이 주인공인 영화 ‘은교’가 터지면서 다시 시로 시선이 집중됐다.

출판 내적으론 인기 시인 류시화 안도현 문태준 김선우 등의 신작 시집 출간, 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 400호 출간, 문학동네의 형식 파괴의 시인선 시리즈 출간, 문학사상의 테마 시집 발간 등 시가 힘을 받았다.

팍팍한 시대에 시(詩)의 ‘서정’의 힘으로 위로받고자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올 상반기 시집 출간은 전년 동기 대비 20%나 늘었다. 정희조 기자/checho@

여기에 결정적 ‘한 방’을 꼽자면 불확실성, 혼돈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다.

상처받고 방황하는 이들이 한 줄의 위로와 공감을 얻으려는 다급한 시대에 긴 호흡의 소설 대신 잠언적이고 따뜻한 서정을 느낄 수 있는 시에 더 다가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희 문학평론가 겸 평택대 교수는 “시의 서정적인 세계가 추구하는 게 세계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 동일화인데 그런 측면에서 요즘 혼돈의 시대에 시가 통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시가 돌아온 건 실로 오랜만이다. 1980년대는 누가 뭐래도 시의 시대였다. 엄혹한 시절, 한 줄의 시는 대중의 가슴을 요동쳤다. 84년 고은 김지하 김용택 등 17인의 합동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의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포스트모던 깃발이 나부끼던 때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며 두 달 만에 20만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대 시는 어려워졌고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소통하지 않는 자기만족적인 시에 대중도 등을 돌렸다. 그런 시가 다시 위로와 공감의 언어로 돌아왔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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