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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峨山에게 금강산이란
아산(峨山) 정주영 전(前) 현대그룹 회장의 자서전을 보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옛말을 실제로 경험했다”고 회상한 대목이 있다. 어린 시절 농사가 싫어 가출했을 당시 돈이 없어 금강산 인근을 배회했던 때를 떠올리며 적은 문구다. 아산은 금강산 자락을 넘나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금강산은 아산의 뿌리이자 고향이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한국의 대표 명산으로 꼽히는 금강산에서 아산이 성장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국내 풍수지리학계의 대표 학자 중 한 명인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금강산과 아산에 얽힌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그는 “아산의 할머니가 손자를 위한 신심이 깊어 금강산 바위 하나하나마다 절을 하며 손자가 잘되길 기원했다는 얘기를 현대 집안 관계자로부터 들은 바 있다”며 “금강산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아산이 1998년 1001마리 소떼를 몰고 북한을 향했을 당시에도, 이를 두고 일각에선 금강산 산신에게 소를 바친다고 해석한 견해도 있다.

금강산은 아산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민족의 영산’으로 불릴 만큼 한반도에서 의미가 큰 산이기도 하다.

민간신앙에도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금강산을 죽기 전에 한 번은 올라야 한다’며 금강산을 높이 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금강산을 동악으로 정해 삼각산(중악), 지리산(남악), 묘향산(서악), 백두산(북악)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오악(五嶽) 중 하나로 여기며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리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불린 금강산은 신라시대 화랑도들이 심신을 수련한 곳이며 불교도들의 순례지로도 유명했다. 유점사, 신계사, 장안사, 표훈사 등 금강산 4대 사찰 외에도 크고 작은 사찰이 108개나 있다.

이 가운데 장안사는 아산과도 인연이 있는 절이다. 아산이 어린 시절 가출했을 당시 돈이 없어 장안사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었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길을 떠날 때 노스님이 음식까지 싸줬다고 한다. 


<김상수 기자>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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