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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峨山 지켜본 ‘300년 당산나무’ … 울산, 현대의 미래가 되다
기업가 정신, 그 뿌리를 찾아서… <3> 현대 창업주 峨山 정주영 회장 -‘ 신화의 본거지’를 가다
지역산업발전 이룬 대동맥 ‘아산로’
학구열의 산실 ‘현대청운고·울산대’
울산 곳곳에 열정·낭만 고스란히

불굴의 정신으로 “無에서 有 창조”
공장지을때 구입한 부지 250만평
처음부터 교육·근린시설 큰 그림

머리보다 가슴으로 통한 경영철학
峨山의 무형유산 여전히 그대로…



“난 나에게 주어진 잠재력을 열심히 활용해 가능성을 가능으로 이뤘던 것이지, 결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중략) 논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분명 안 될 일이고 못할 일을 우리는 해내고 있다.”(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중)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에 들어서자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의 해송이 눈에 박힌다. 누군가 귀띔한다. “300년 이상 된 당산나무입니다. 아산(峨山) 정주영 전(前) 현대그룹 회장도 이 나무만큼은 절대 손을 못 대게 했죠.”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고, 세월 앞에 변치 않는 것 역시 없다. 강산이 네 번도 넘게 변했을 40여년의 시간에 기업가 ‘아산’ 정주영의 흔적은 많은 부분 변모했다. 아산이 치열하게 격론을 벌였을 본관 건물은 최신식 고층 빌딩이 대신했고, 첫 배를 잉태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작업 현장 역시 거대한 신식 중장비가 들어섰다.

그래서 이 당산나무가 더욱 반가웠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산의 정신은 그대로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듯, 위용이 대단했다. 울산의 재탄생, 아산과 현대의 출발부터 지켜본 나무다. 지금도 해마다 마을 주민이 이 나무에 모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고 한다.

아산은 머리보다 가슴에 가까운 경영인이다. 냉철한 이성보다는 뜨거운 열정을 주문했고, 불가능이란 고정관념을 가장 경계했다. 그리고 그의 도전정신은 ‘울산’이란 도시를 만들었다. 아산이 울산을 계획하고 개발하기까지 그의 열정과 낭만이 울산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조금 전 울산에 들어서면서 인상 깊었던 아산로가 떠올랐다. 현대자동차가 총 사업비 326억원을 투자해 준공한 왕복 6차선 도로로, 울산 산업 발전의 대동맥 역할을 한 길이다. 현대차는 이 도로를 울산시에 기부했고, 울산시는 아산의 공적을 기리는 차원에서 ‘아산로’로 명명했다. 
1.‘포니 엑셀’ 신차 발표회에서 아산이 차를 둘러보고 있다. 아산은 평소 “자동차 산업이 발전 해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1985년)

2. 아산은 차관 도입을 위해 상환능력을 의심하는 영국 애플도어 사의 회장 앞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며 “한국은 이미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했다.(1971년)

3.영국 바클레이스은행과 조선소 건설 차관도입 서명을 마친 아산.(1971년)

그런 아산로를 지나 찾아온 현대중공업이다 보니 아산의 숨결이 계속 여운에 남나 보다. 문화관으로 들어서는 외국인 행렬이 눈에 띈다. 이란의 한 회사 직원들이 단체로 문화관에 방문한 것이다. 연 20만명 내외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아산의 흔적을 보고자 일부러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산의 열정은 이렇듯 후학들에겐 교훈이다. 1970년 아산이 이곳에 조선소를 세울 당시, 백사장을 찍은 울산 사진과 500원짜리 지폐만으로 자금을 확보했다는 전설 같은 일화는 아직도 뭉클하다. 아산은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 롱보텀 A&P애플도어 회장을 만나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보이며 “한국은 이미 1500년대부터 철갑선을 만든 나라”라고 강조하며 차관을 이끌어냈다. 소나무와 초가집뿐인 백사장 사진을 들고 조선소를 짓겠다며 세계 각국의 선주를 만나 기어이 뜻을 관철시켰다. 스스로를 ‘봉이 김선달’과 같았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한 열정 덕이었다.

현대중공업 한가운데에 있는 영빈관에 오르자 현대중공업의 뜨거운 작업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산도 이곳에서 현대의 미래를 내다봤을까. 공장뿐 아니라 울산 전체의 모습이 상쾌하게 펼쳐진다.

아산은 처음 울산 지역에 공장을 세울 때 250만평에 이르는 땅을 구입했다고 한다. 현재 현대중공업 전체 부지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아산은 처음부터 이곳에 공장만 필요한 게 아니라 교육시설, 근린시설까지 모두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현재 울산의 병원ㆍ쇼핑센터ㆍ교육시설ㆍ저수지 등이 모두 그 땅 위에 세워졌다. 울산에 공장을 지은 게 아니라 도시를 하나 새롭게 건설한 셈이다. 적확한 혜안이다.
울산 현대중공업 건물 앞에 있는 300년 이상 된 당산나무. 현대의 출발과 성공을 모두 지켜보도록, 아산은 “이 나무만큼은 손대지 말라”고 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영빈관은 현대중공업의 영접시설로, 공장 내에 세운 건물이다. 또 이곳은 아산이 직원과 몸으로 소통했던 곳이기도 하다. “영빈관 잔디밭에 모여 직원과 함께 불고기파티를 열었고, 공터에서 직원과 직접 씨름판을 벌였다고 합니다”라고 안내자는 말한다.

이젠 최신 건물과 신응수 대목장이 지은 한옥 건물이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다. 불고기를 앞에 두고 직원과 어깨동무하며 막걸리를 기울였을 아산을 떠올리며 잔디밭을 천천히 걸어봤다. 인근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산은 대나무를 특히 좋아했다. 영빈관을 비롯해 울산대나 현대청운고등학교 등 아산과 연관된 장소마다 대나무는 주인으로 들어앉아 있다.

대나무의 무엇이 좋았을까. 굽히지 않고 곧게 뻗는 열정을 본받고 싶었을까. 사시사철 변치 않고 푸름을 간직하는 기개가 좋았을까.

울산에 남아 있는 아산의 흔적은 공장뿐이 아니다. 현대청운고등학교나 울산대 등 아산이 설립한 교육기관에서도 아산의 학구열과 애정이 남아 있다.

현영길 현대청운고교장은 현재 청운고에서 유일하게 아산을 만난 적이 있는 인물이다. 1977년 처음 학교가 설립될 때 1기 교사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현 교장은 “새벽이나 늦은 밤에 예고도 없이 불쑥 학교를 찾아와 직접 학교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할 만큼 정 명예회장은 학교에 큰 관심을 쏟았다”고 회상했다.

처음 개교할 때 700명의 학생에게 직접 아산이 학교 교표와 영어사전을 나눠주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했던 장면도 떠올렸다. “영어사전을 나눠준 게 참 인상 깊었습니다. 세계로 나갈 인재로 성장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현 교장은 아산이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해야 국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이 커지면 향후 항공기 산업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강연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울산대 교정에 남아 있는 아산의 글귀는 좀 더 진솔한 심정이 전해진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젊은 시절 어느 학교(현 고려대) 공사장에서 돌을 지고 나르면서 바라본 대학생들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에게는 한없는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중략) 젊은이들이여, 이 배움의 터전에서 열심히 학문을 익혀 드높은 이상으로 꾸준히 정진하기를 바란다.”

아산의 육신은 선영에 잠들었다. 하지만 울산에 남긴 아산의 정신만은 그대로다. 공장을 넘어 아예 새로운 도시를 하나 건설하겠다는 아산의 큰 그릇과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도전의식, 귀천을 구별하지 않고 진솔하게 세상과 소통하려 한 경영철학 등 아산이 남긴 무형의 유산은 여전히 울산에 살아 있다.

“이봐, 해봤어?”

울산을 떠나는 기자의 귓가에 아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울산=김상수 기자>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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