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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휘소 박사, ‘힉스입자’ 최초 명명
[헤럴드경제=박혜림인턴기자]우주탄생의 비밀을 밝히는 실마리로 알려진 ‘힉스입자’의 발견에 세계 물리학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지난 1977년 타계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고(故) 이휘소 박사가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힉스입자를 처음으로 ‘힉스’라고 명명한 것이 다름아닌 이 박사였기 때문이다.

힉스입자 존재를 예견한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와 한국을 대표하는 이 박사의 인연은 지난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당시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한다는 ‘미지의 입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관측되거나 측정된 바 없는 이 입자의 개념은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서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심지어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는 “물리학에 별 중요한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물리학 학술지 게재를 거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박사만큼은 달랐다. 그는 이 미지의 입자가 지닌 가치를 알아봤고, 이후 1972년 이 박사는 미국에서 열린 고에너지불리학회를 통해 ‘힉스 입자에 강력(강한 핵력)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미지의 입자를 처음으로 ‘힉스’라고 지칭한 것이다.

당시 이 박사는 해당 논문에서 힉스 입자가 “자연계가 질량을 갖게 하는 근본 입자일 것”이라며 “그 질량이 양성자의 110배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박사는 이후에도 힉스입자를 직접 연구했고, 이 입자가 주목을 받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실제로 지난 4일 CERN이 “새로 발견한 소립자가 오랫동안 찾아왔던 힉스입자일 확률이 크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하자 트위터 상에는 “이휘소 박사가 살아있었다면 노벨상이 유력했을 것”이라며 이 박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상당수 올라왔다.

한편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 이 박사(미국명 벤자민 리)는 그의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잘 알려져 있다. 소설 속에서 이 박사는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가 의문사한 과학자’로 등장하지만 그의 제자와 지인들에 따르면 이 박사는 핵 개발과는 거리가 먼 이론 물리학자였다.

현실의 이 박사는 고에너지 물리학의 개척자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게이지 장자장론에서 재규격화 정립과 참입자에 관한 탐색에 대한 연구’로 유명세를 떨쳤으며 한국의 역대 물리학자 가운데 노벨 상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1년부터는 세계 최고의 물리학연구기관인 페르미 국립가속기 연구소에서 입자물리학 연구팀을 이끌며 힉스입자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처럼 지난 1977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겨우 42세의 나이였다.

mne1989@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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