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예계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의식이 한층 성숙해진 가운데 이들은 화려한 스타들의 모습은 물론, 연예인이 되기까지의 뒷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본지는 ‘핫데뷔 일기’라는 코너를 통해 스타들의 진솔한 속내와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과정을 낱낱이 공개, 대중들과 스타들에게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이번 주인공은 작곡가 용감한형제가 직접 프로듀서로 참여해 데뷔 전부터 대중들의 큰 관심을 얻은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예진이다. <편집자 주>
브레이브걸스 예진의 핫데뷔일기①에서 이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에서 가수를 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항상 한국에 대해 생각했고, 관심을 가졌다.
MBC 합창단 출신인 어머니는 내게 “특별한 삶을 살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평범하게 살라”고 하셨다. 나는 그 적정선 어딘가 쯤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학창시절 부모님께서 공부에 대한 압박을 하지 않으신 덕분에 고등학교 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스트레스는 심했다. 음대를 거부하는 나와 음대를 고집하는 어머니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고 3때인 걸로 기억한다.
한국에서 가수를 하는 것이 꿈인 나는 한국에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어머니는 대학만큼은 당신이 원하는 곳을 가길 바라셨다. 결국 나는 뜻을 완전히 굽히지는 않고,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으로 ‘미스코리아’라는 제안을 내놨다. 물론 부모님이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완고한 내 의지에 결국 뜻을 굽히셨다.
그렇게 시작한 미스코리아 되기.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2008년 미스 시애틀 진이 됐고, 한국에서 진행되는 본선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관객석을 봤는데 엄마가 울고 계셨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이후 본격적인 한국 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한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잘 알지 모르는 상태에서 뛰어든 나는 한 달간의 합숙을 거쳤지만 입상하지 못했다.
오랜 준비를 하지도 않았고, 어쩌면 반항으로 나간 대회였지만 얻은 것이 많은 경험이었다. 무대에 서는 것이 마냥 즐거웠고, 리허설 때 댄스실력을 뽐내서 센터자리를 차지했는데 사실 그때 ‘내 할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하.
그리고 무엇보다 한 달정도의 한국 생활이 내겐 정말 좋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벤쿠버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목표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아이구나’라고 생각하셨던 부모님은 결국 내 편을 들어주셨다.
김하진 이슈팀기자 / hajin1008@
사진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효범작가(로드스튜디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