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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범신, 네 번의 자살시도와 눈물…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난, 가난이 빚어낸 지독한 불화, 자아가 형성되지 않던 시절의 과도한 독서량, 존재의 무의미, 시대가 빚어낸 상처는 네 번의 자살시도로 돌아왔다. 영원한 청년작가 ‘은교’의 박범신의 이야기다.

소설가 박범신이 18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방문했다. 70대 노인과 17세 소녀의 사랑을 담은 소설 ‘은교’가 영화로 만들어지며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하자, 원작자에게도 끊이지 않는 관심이 쏟아졌다. 영화 ‘은교’는 알아도 그 소설을 쓴 박범신을 잘 모르는 청년 세대로부터였다.

박범신 작가는 이날 방송을 통해 ‘은교’를 빌어 말하고자 했던 인간의 오욕칠정에 대한 포용과 작가의 길을 걸어온 수십년, 그 길에서 마주했던 절망의 순간들에 대해 박 작가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전했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도 있었다. 네 번의 자살미수와 관련한 이야기가 그랬다.

스스로가 가했던 일이었음에도 박범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해마다 늘어나는 자살률과 만성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에끼칠 악영향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특히 전세대를 끌어모은 브라운관 앞이었기에 부담도 컸다.

그러나 박범신 작가는 스스로를 치유하듯, 이제는 “과거의 일들을 너무나 후회하고 있다”면서 “삶은 경이로운 것”이라는 말로 입을 열며 네 번의 자살미수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박범신 작가는 먼저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담벼락에 간혀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어린시절은 가난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그 지독한 가난은 가정의 행복을 앗아갔다. 어머니는 늘 신경이 곤두서있었고, 아버지는 노상 집을 비웠다. 가난한 가장의 삶은 부지런히 돈을 버는 것뿐이었다. 위로 줄줄이 어있는 누나들은 비좁은 방 안에서 서로를 할키는 공격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가족이 고통이고 두려움이었던 어린 박범신은 자기 세상안에 갇혀 점차 심약해져갔다.

당시를 떠올리며 박범신 작가는 “어린시절 집 안에 들어서기 두려웠다. 어둠이 감지됐기 때문이었다”면서 “평화로운 다른 집의 모습에 나에게는 담벼락이 쌓여갔다”고 했다.

출구는 책이었다. 가리지 않고 읽고, 원하는 것만 빨아들이는, 박 작가가 이르기를 그리 좋지 못한 독서법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남독을 했다”는 그는 “과도한 독서량이 나를 가둬 놓았다. 그래서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결국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세 번째 자살시도는 청년시절이었다.

박범신 작가는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면서도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말라”고 했다. 현재의 아내와 연애할 당시 박 작가는 어느 저녁, 휑한 여관방 안에서 스스로 팔을 그었다. 자신의 존재 자치에 대한 의문과 회의 때문이었다.

마지막 자살시도는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미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세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작가 박범신이 된 이후의 일이다.

시대의 아픔이 한 사람의 가슴에 고스란히 상처가 된 때였다. 당시는 “격동의 80년대였다”고 박 작가는 말했다. “흉흉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 시대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다. 대중에게 인기있는 작가라는 이유로 가시방석에 앉아야했다”는 박범신 작가에겐 ‘동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자유를 부르짖으며 핍박받을 때, 시대가 아픔을 말하고 있을 때, 자기만 외떨어져 돈을 벌고 평화로운듯 잘 살고 있는 모습이 끝없는 자괴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가장 큰 상처는 ‘동지’라고 부른 이들이 나를 비난한 일이었다”고 했다. 그 무렵 박범신 작가는 마지막 자살시도를 했다. 역시 미수에 그쳤다.

돌아보니 박범신 작가는 “그 때의 일들을 모두 후회”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상처를 털어냈다.

이날 박범신 작가가 출연한 ‘힐링캠프’는 5.8%의 전국시청률을 기록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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