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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최고의 실용대백과사전’, ‘임원경제지’ 113책 전모 드러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냉수 한 동이를 옆에 두었다가 굽자마자 물에 담기를 10여 차례 한 뒤에 유장과 물료를 섞어 다시 구우면 매우 연하고 맛이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楓石 徐有榘ㆍ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圓經濟志)’의 ‘정조지’에 나오는 돼지고기 굽는 법이다. 요즘 고기 구이법과 비교하면 몸에 좋고 풍미도 남다른 요리법이라 할 만하다. 실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16개 분야의 온갖 생활정보가 ‘임원경제지’ 113권에 빼곡하다. ‘전통문화 콘텐츠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육조판서와 관찰사까지 두루 역임한 서유구는 관직을 떠난 뒤, 지금 비무장지대(DMZ)에 속한 파주 장단 집에 내려와 살면서 몸소 실사구시를 실천하며 82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18년간 ‘임원경제지’를 집필했다. 장장 113권 54책으로 단일 저작물로는 최대다. 관념에 치우친 조선 유학자의 학문 태도를 버리고 직접 음식을 차리고 옷을 짜보고 농기구를 만들며 조선시대 생활 전반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여기에는 온갖 곡식 농사법과 농기구, 채소와 약초 재배, 온갖 국화류와 화훼 재배법, 과실수와 나무 재배, 각종 옷 직조법, 염색법, 가축 사육법, 165가지에 이르는 전통주, 전통음식 요리법, 전통 건축, 보양법 등이 16개 분야로 정리돼 있다. ‘전통문화 콘텐츠의 보고’라 할 만하지만 방대함과 전문성 때문에 지금껏 고전번역원은 물론 누구 하나 번역에 손을 대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이 책이 임원경제연구소 정명현 소장을 비롯, 40여명의 젊은 연구자들의 열정으로 9년만에 완역됐다. 그동안 내용의 일부가 번역ㆍ출간된 적은 있지만 전모가 번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풍석 서유구는 누구인가=18, 19세기 실학시대는 정약용을 비롯, 이익, 박제가, 정약전, 김정희 등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이들의 삶과 저서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진 것과 달리 서유구는 유독 무명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서유구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만도 64건이 올라있고 ‘일성록’엔 505건, ‘승정원일기’에는 1273건, 규장각 일지인 ‘내각일력’에는 무려 2788건이나 기록돼 있다. 정약용이 실록에 38건, 일성록 189건, 승정원일기 609건, 내각일력 261건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난다. 정조가 낸 ‘시경 강의’ 시험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얻는 이도 다산이 아니라 풍석이었다. 서유구 집안은 대대로 경화세족 가문으로 할아버지 서명응은 영ㆍ정조시대 명망있는 학자로 ‘보만재총서’ 60책을 남겼다. 정조가 “조선 400년 동안에 이런 거편은 없었다”고 최고의 평가를 내린 책이다. 가정백과사전으로 익히 알려진 ‘규합총서’의 저자 빙허각 이 씨는 서유구의 하나뿐인 형수다.

▶‘임원경제지’의 독창성에 대한 의문=정명현 소장은 일각에서 ‘임원경제지’의 중국 서적 인용을 두고 독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대해 통계적 분석 결과를 내놓고 반박했다. 252만여 자 전체를 입력하고 조선과 중국, 일본의 저술을 분리하고 풍석의 저술 글자수를 분리해낸 결과, ‘인제지’의 경우, 19.3%에 달했다. 정 소장은 ’농정전서’를 쓴 서광계의 경우, 자신의 저술비율은 8.7%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임원경제지’ 전체 중 조선 문헌의 비율은 총 27,1%로 저술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 정도를 넘어서는 조선의 전문서적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 풍석 저술은 ‘임원경제지’ 전체에서 18.6%를 차지한다. 유서류의 책을 쓰면서 전체 5분의 1에 가까운 양에 자신의 저술 또는 견해를 반영했다는 건 의미가 적지 않다. ‘임원경제지’의 탁월함은 분량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서술이다. 전체 내용이 강목(綱目)의 체계로 잘 정리돼 있다.

풍석은 왜 ’임원경제지‘를 썼을까,‘임원십육지’ 서문에서 풍석은 “시골에 살면서 뜻을 기르는 데 필요한 책은 수집해 놓은 것이 거의 없어서, 시골에 사는 데 필요한 내용을 대략 채록”했다고 밝혔다. 또 ‘임원’으로 제목을 붙인 건 벼슬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방법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했다.


▶‘임원경제지’ 원본은?= ‘임원경제지’는 현재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원본을 필사한 오사카 부립나카노시마도서관에 소장된 오사카본, 고려대본, 서울대규장각본 등 서너 본의 필사본이 존재한다. 북한본이 존재한다는 설과 함께, 그게 원본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임원경제지’는 원문이 없기 때문에 원전 내용의 정확도를 세밀히 점검하는 교감작업이 필수다. 필사본을 번역할 경우, 그 원전이 저자의 육필 원고인지, 후대에 저자의 원본을 옮긴 원고인지 밝히는 게 먼저다.

임원경제연구소는 이본(異本)을 비교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확정화하는 정본화 작업을 거쳐 2014년 113권 전질을 55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전권 출간에 앞서 완역의 결과물로 책의 전체적인 모습을 해설한 ‘임원경제지’(씨앗을뿌리는사람 ㆍ1629쪽) 개관서가 먼저 나왔다. 서유구의 삶과 사상, 16개 분야에 대한 해설과 서문, 세부 목차를 담고 있어 임원경제지의 실학사적 의의와 구체적인 내용 범주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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