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찾은 서울 용산역 일대의 선인상가. 상인들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일요일 오후라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대부분의 행인들은 관심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주말인데도 선인상가 1층 가게 중 손님이 상담을 받는 곳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상담 받는 점포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일찍부터 문을 닫거나 아예 점포가 빠져나간 빈 곳도 쉽게 눈에 띄었다.
최근 스마트폰과 태블릿 열풍으로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수년 간 이어진 용산 전자상가의 불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PC업체들이 줄줄이 짐을 싸는 이른바 ‘용산 엑소더스’가 나타나면서 이 지역 상가의 공실률은 어느덧 두 자리수로 올라갔다. 급기야 관리비만 받는 무임대 점포까지 생겨나면서 국내 IT제품의 ‘메카’라 불렸던 용산은 어느덧 ‘무덤’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진상가에서 7년째 장사를 해온 최모씨는 “빈 가게가 점점 많아지면서 용산은 이제 돈을 벌 수 없어 모두가 떠나는 곳이 됐다”며 “1년 이상 버티는 가게가 절반밖에 안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용산을 찾는 손님이 줄어들면서 ‘용산 위기설’이 등장한 건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인들마저 용산을 속속 떠나고 있다. 선인상가 내에 자리한 S공인중개사 업주는 “점포를 임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임대료가 끝없이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190만원이었던 임대료가 많게는 30만원까지 떨어진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대폭 낮춘 이유는 관리비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계산이다. 임차인을 못 구하면 빈 가게의 관리비를 고스란히 자신들이 물어야 하기 때문. 하지만 관리비 수준의 임대료조차 소용이 없자 울며겨자먹기로 임대료를 받지 않는 무임대 점포까지 나오는 지경이 됐다. 나진상가 인근에 위치한 A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입주율이 떨어지는 대단지 아파트나 신도시에 나올 법한 무임대 점포가 노른자리라 불리는 용산에 나올 정도면 이곳 사정이 얼마나 나쁜지 보여주는 것 아니냐”며 되물었다.
‘아! 옛날이여’ 한때 조립PC 산업의 메카였던 용산 전자상가가 최근 불황을 만나 일요일에도 한산한 모습이다. 서지혜 기자/gyelove@heraldcorp.com |
결국 용산에는 컴퓨존, 아이코다, 조이젠 등 중견 업체들만 살아남았지만 이들 역시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조이젠 관계자는 “최근 3, 4년 동안 이익금이 거의 없었다”며 “가격비교사이트 때문에 값을 올릴 수도 없으니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아이코다 관계자 역시 “매출이 감소한 게 사실”이라며 “올해 5월 성장률이 지난해에 비해 반 토막 났다”고 말했다.
컴퓨존에 파워ㆍ케이스를 납품하는 납품업자 신모(31) 씨는 “중국 부품 가격이 많게는 5배까지 올라갔다”며 “컴퓨존 같은 큰 업체가 납품 가격을 못 올리게 압박해서 살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 “스마트폰과 태블릿 때문에 조립 PC 수요 자체가 줄었으니 중견 업체도 마진이 안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근에는 ‘IT 거상’을 꿈꾸고 용산에 입성한 젊은이들 중 전혀 다른 업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용산에서 조립PC를 판매하던 김모(33) 씨는 지난해 금융권 전산관리 하청업체로 전환했다. 그는 “IT에서 일하다 다른 일 하기가 쉽지 않지만 남아서 손가락만 빨 수는 없어 장사에 투자한 돈이라도 건져보단 심정으로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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