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 이웃의 평범한 부자들의 ‘기부관’은 어떨까. 이들은 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실천하고 있을까.
헤럴드경제는 연중기획 ‘부자의 자격-신(新)리세스 오블리주’와 관련해 ‘우리시대 주변의 부자들의 기부관’에 대해 설문을 실시했다. 설문은 커리큘럼 ‘부자학’ 수업을 듣는 서울여대 대학생들이 친척이나 지인을 통해 직접 만난 부자들 78명에게서 받은 것이다. 우리 시대의 부자들의 신리세스 오블리주를 만나본다.
▶절반이 “번 돈 사회에 환원하겠다”=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간의 부자’,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돈 걱정없이 사는 주변의 부자들에게 물었다. ‘귀하가 번 돈을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놀랄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78명 중 정확히 반인 39명(50.0%)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다. 물론 모든 재산을 다 기부한다는 것은 아니다. 35명(44.9%)은 “일부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최소한 노후생활비는 남기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다. 모든 재산을 사회에 맡기겠다는 이 4명(5.1%)과 합치면 정확히 절반이 적든, 적지 않은 돈이든 기부 의사를 표명했다. 부(富)의 대물림에 대한 거부감이 뚜렷했다.
‘부자학’ 수업을 맡고 있는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경영학ㆍ부자학연구학회 회장)는 “부자들의 사회 소통과 배려, 기부에 대한 인식이 선진화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물론 78명이라는 작은 표본은 신뢰성 측면에서 부자들 전체의 시각을 대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들 78명의 답은 진정성이 깃들여져 있다. 이 설문은 서울여대 대학생의 과제물인 ‘우리 주변의 부자를 찾아서 실시하는 리세스오블리주 설문’을 집계한 것이다. 대학생들은 친척 등 부자라고 생각하는 집을 방문했고, 설문지를 받은 이들이 거짓 답변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데이터 유효성은 충분해 보인다.
설문에서 ‘개인적으로 사회에 대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78명 중 62명(79.5%)이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는 20.5%였다. 10명 중 8명 꼴은 어떤 형식으로든 주변에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다.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방법을 물은 결과, 공익단체(재단법인, 사단법인, 종교기관 포함)에 금전적인 기부를 한다는 답이 35.9%였다. 봉사활동(9.0%), 1:1 자매결연을 통한 개인 후원(7.7%), 재능 기부(6.4%) 순이었다.
▶가장 착한기업엔 포스코= 부자들은 ‘사랑받는 기업을 향한 노력과 성과 중 가장 앞서 있는 국내그룹(기업)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포스코(28.2%)를 가장 많이 꼽았다. 삼성(23.0%)은 두번째, 두산(7.7%)은 세번째, 현대차(5.1%)는 네번째 랭크됐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이 2위로 밀린것도 의외지만, 다양한 이슈 제기 등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현 시점에서 포스코 이미지가 으뜸을 차지한 것은 눈길을 끈다. 국내 최고(最古)의 글로벌 철강업체로 한국 경제성장사(史)와 뗄레야 뗄수 없는 한 축인 포스코에 대한 오랜 이미지가 신뢰성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포스코의 장학재단과 지역 지원사업, 또 고(故) 박태준 회장의 사회공헌 노력이 부자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두산과 현대중공업이 비교적 상위권에 포진한 것 역시 두 기업이 주력하고 있는 사회공헌 사업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올해 나눔경영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대기업 CEO 또는 오너’를 예상하는 질문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8.2%)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국내 경영자 대표 아이콘에 대한 나눔경영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는 평가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14.1%로 두번째였고,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11.5%로 세번째로 꼽혔다. 허창수 GS그룹 회장(6.4%), 최태원 SK그룹 회장(6.4%)은 나란히 네번째로 기대되는 인물로 선택됐다. 허 회장의 경우엔 전경련 회장으로서 언론에 비춰지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반사이익을 누린 것으로 해석된다.
▶대기업 사회적 환원 노력엔 불만=부자들은 우리 대기업의 나눔과 사회공헌에 대한 충실도를 낮게 평가했다. ‘대기업이 나눔과 사회 공헌 등 사회적 환원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이는 14명(17.9%)에 그쳤다. 64명(82.1%)은 ‘아니다’고 답했다. 대기업이 재단 출연이나 오너의 사재출연, 동반성장을 위한 협력사 지원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까지는 이들 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주변의 부자들 역시 반(反)기업정서의 영향권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에 대기업들은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어느정도 부(富)를 갖춘 계층에게도 자사의 사회공헌과 나눔 이미지를 한층 제고할 필요성이 높아 보인다.
대기업에 대해 싸늘한 이유는 있다. ‘대기업이 나눔에 인색하다고 여긴다면,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보여주기식 이벤트성 기부에만 관심’(24.4%) 때문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영업 목적의 이미지를 높이려고 일회성, 이벤트성으로 기부를 접근한다는 불만스런 시각이 묻어 나온다.
‘후계경영을 위한 집착’(19.2%) 때문이라는 답도 적지 않았고, ‘해당기업의 독식의지’(11.5%) 때문이라는 응답도 많았다. 특히 ‘오너 또는 CEO의 나눔 인식 부족’(6.4%)도 지적돼 대기업 오너들은 현재보다는 좀더 진정성있는 사회공헌 노력,또는 새로운 방식의 나눔문화를 개척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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